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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드캣 인터뷰] 대한민국 블루스 巨匠, 김목경

 

취재: 사운드캣 이준동 국장 <사진제공:김목경>

[사운드캣 인터뷰] 대한민국 블루스 巨匠, 기타리스트 김목경

 

블루스(Blues)

블루스(Blues)는 19세기 중엽 미국 노예 해방 선언 이후 미국으로 넘어온 남부의 흑인들이 창시한 장르, 혹은 음악적 형태를 말한다. 이 장르는 아프리카 전통 음악과 노동요 등에 뿌리로 두고 있다.

블루스는 장르로서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가사와 베이스 라인, 그리고 악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초기 블루스는 해방된 흑인들의 비참한 생활환경, 인간적인 슬픔, 고뇌, 절망감 등이 드러나 있고 대부분 본인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이나 경험, 그리고 아프리칸-아메리칸의 사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처음 발매된 블루스는 1908년 안토니오 마지오의 〈I Got the Blues〉이다. 그 뒤를 이어 하트 반드의 〈Dallas Blues〉가 1912년 발매되었고, W.C. 핸디의 〈Memphis Blues〉가 같은 해에 나왔다. 처음으로 녹음된 아프리카계 미국인 가수는 마미 스미스, 1920년 페리 브래드포드의 〈Crazy Blues〉이다.

하지만 블루스 기원은 이보다 10여 년 전인 1890년도 정도로 추정된다. 블루스는 미국 남부 목화 농장의 노예들로부터 시작된다. 남북전쟁 이후 농장에서 흑인 노예들에 의해 불리었던 할러, 혹은 노동요로 불리는 음악들은 농장제가 없어지면서 동시에 소멸되었지만 아프리카적 요소들을 고스란히 도입하고 있던 이러한 음악들이 민스트럴 쇼, 교회에서 불리던 복음성가 등과 합쳐지면서 렉타임, 부기우기 등으로 발전되었고 블루스의 원류를 형성하는 음악이 된 것이다.

블루스의 음악적 스타일, 형태, 멜로디, 스케일 등은 로큰롤, 재즈, 그리고 대중음악 등 많은 장르의 음악에 영향을 끼쳤다. 블루스 스케일은 현대음악 어디에나 존재하며 많은 장르 안에 분포해 있고 5도 코드(파워코드)를 사용한 록 음악에서도 사용되며 당시의 소울 음악에도 영향을 끼쳤다. 1950년대 소울 음악은 샘 쿡, 레이 찰스, 제임스 브라운이 가스펠과 블루스의 틀을 사용하며 시작됐다. 이어 1960~1970년대에 소울 블루스라는 새로운 장르가 생긴다. 포크 음악은 1970년대에 소울 음악의 영향을 받아 시작된다.

 

한국에서의 블루스

한국에서는 당시 ‘부루스’라는 국적 불명의 춤 때문에 카바레에서나 들을 법한 퇴폐적인 장르라는 인상을 준적 도 있었다. 한국에서 블루스라는 장르 자체가 대세가 된 적은 없지만 사실 한국 가요계의 상당부분을 점하고 있는 록 음악, 발라드, 재즈, R&B, 트로트 모두 블루스의 후예라는 점을 감안하면 루트 음악으로서 영향력은 어마어마하다고 할 수 있다.

한국 블루스의 뿌리는 생각보다 매우 오래 되었으며 6~70년대 신중현 등 미8군 출신 뮤지션들은 모두 블루스에 음악적 정체성을 두고 있다. 이들은 록 음악이나 사이키델릭 음악으로 그 영역을 넓혀갔고 류복성 같은 전설적 재즈 드러머가 나온 것도 이 시기였다.

80년대 신촌블루스는 아예 밴드 이름에 ‘블루스’라는 이름을 넣을 정도로 대표적인 블루스 밴드. 이 외에 사랑과 평화, 봄여름가을겨울 등의 걸출한 밴드 역시 블루스 밴드로 볼 수 있다. 90년대 중반에 나온 강산에나 윤도현 등의 록커들도 블루스에 대한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또 앞서 말한 대로 댄스곡을 제외한 대부분의 한국 가요는 블루스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의 재즈 1세대들은 실연 등의 슬픈 일이 있을 때 마다 ‘난 이제 블루스를 더 잘 연주할 수 있게 된거야’라며 위안을 했다고도 전해진다. 재능만이 아니라 인생의 경험이 녹아드는 진정한 음악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블루스 음악을 대표하는 많은 음악인 중에서 대한민국 블루스 기타리스트로 대중음악 국무총리 표창 수상자하고 세계적인 기타회사 펜더사로부터 커스텀기타를 헌정 받은 인물, 그리고 아시아 최초로 세계 3대 음악 페스티벌인 ‘Beale Street Music Festival’에서 블루스 뮤지션 자격으로 3일 연속 라이브 공연을 했던 인물이 바로 대한민국 블루스 기타리스트 김목경이다.

대한민국 블루스 명인을 얘기 할 때 꼭 거론되는 인물이기도 하며 아시아 블루스 명인을 논할 때도 꼭 손에 꼽히는 인물이다. 국내에서는 김광석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의 원곡자로 알려져 있으며 오히려 세계에서 인정받고 높이 평가되는 인물, 한국 블루스 음악의 거장 김목경을 직접 만나 그의 음악과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목경 선생님. 안녕하세요. 사운드캣 홈페이지를 방문하는 모든 후배 음악인분들께 인사 말씀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아직도 블루스 음악을 공부하고 있는 김목경 입니다. 이렇게 사운드캣 인터뷰를 통해 많은 후배 여러분들에게 인사를 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음악의 장르를 떠나 대한민국에서 음악을 사랑하고 젊음의 열정을 바치는 후배 음악인 분들 모두를 응원합니다.

아직도 블루스 음악을 공부하는 음악도인 저에게 이렇게 블루스 음악을 대표하는 음악인으로 인터뷰 요청을 해준 사운드캣에도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저는 블루스의 거장이 아닌 그냥 블루스 음악을 사랑하는 기타리스트가 맞을 것 같습니다.

사실 내가 만일 블루스 음악이 아닌 다른 걸 했으면 그렇게 오래 못 갔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돈도 못 벌 뿐더러 인구도 많지 않은 나라에서 왜 블루스를 하느냐” 많이들 물어보는데 저의 답은 간단합니다.

“일단 내가 좋다. 이걸 하면 굉장히 재밌다. 그건 어떻게 보면 늙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한마디로 제가 지금까지 블루스 음악을 공부하면서 블루스 음악을 연주하는 이유가 잘 설명 되리라 믿습니다.

 

국내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하시고 세계적인 기타제조사 펜더로부터 헌정 기타를 받으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지요?

둘 다 2013년, 한 5년 전이네요. ‘2013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시상식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한 적이 있습니다. 이 때 문화예술 각 분야를 대표하는 분들이 함께 했구요, 저를 비롯해 성우 박일, 연기자 김갑수, 가수 이승환, 프로듀서 서수민(개그콘서트) 등의 쟁쟁하신 분들이 수상의 영예를 함꼐 안아 저에게는 더욱 뜻 깊고 특별한 상이었습니다.

그리고 2013년 11월, 지금까지도 저에 대한 과대평가 또는 과찬이라 생각되는 사건이 바로 펜더사의 헌정기타입니다. 제가 계속 펜더만 쳤기도 했지만 아마도 제가 하는 음악이 일단 록의 기원인 블루스니까 헌정해준 것으로 생각합니다. 아직까지도 저에게 있어서는 ‘블루스를 하길 참 잘했다’라고 생각이 들 만큼 의미 있는 순간이었지요.

그 전에 펜더가 트리뷰트 해준 국내 뮤지션 1호가 바로 신중현 선생이었습니다. 저와 함께 신대철(‘시나위’ 기타리스트)과 김도균(‘백두산’ 기타리스트)이 함께 헌정 기타를 받았습니다.

 

선생님께서 음악의 길을 걷게 된 경유가 궁금합니다

기타는 중2때부터 치기 시작했습니다. 누나가 피아노를 전공했는데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 방에 놓여있는 기타를 발견하고 제일 쉬운 코드를 손가락 그림을 보면서 쳐 보았는데 그때 울리던 화음에 매료되어 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보다 전에 초등학교 시절 아무도 없는 집에서 AFKN에서 우연히 들었던 컨트리 음악을 처음 듣고 방과 후 매일 그 방송을 들었고 그것이 기타를 치는데 영향을 많이 준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후 고등학교 때 청계천에서 산 블루스 컴필레이션 앨범을 듣고 블루스에 빠지기 시작했고 일렉트릭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 했지요. 블루스를 알기 전에 그렇게 어려웠던 기타리프들이 그 음반을 들으면서 풀리기 시작했고 많은 백인 뮤지션들이 흑인의 블루스를 이용해서 음악을 만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날 청계천에서 산 음반에 프레디킹. 비비킹. 알버트킹. 알버트 콜린스등 흑인 기타리스트가 다수 있었지요. 훗날 그들은 나에게 지대한 음악적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 후 군악대를 지원하고 군복무후 영국으로 가게 됩니다. 6년이란 세월을 한번도 한국에 오지 않고 1990년 영국에서 녹음한 1집 앨범의 마스터 테입을 기지고 귀국했습니다.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블루스는 어떤 음악인지요?

블루스는 느낌의 음악입니다. 아프리카에서 온 흑인 노예들은 음악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사람들 이지만 그들이 읇조리듯 흥얼거리는 음계속에 블루노트가 있었고 그런 음계를 처음들었던 백인들은 그것을 도용해 백인의 컨트리 음악과 합쳐 ‘Rock & Roll’이 탄생하게 됩니다.

블루스라는 음악에 대해 길게 설명하는 것 보다 딱 한마디로 정의하고 싶네요. ‘블루스는 장르를 불문한 모든 대중음악의 뿌리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기타 연주에는 가장 중요한 스케일 이기도 하지요.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궁금합니다

아까 말씀드렸던 영국 유학 할 때의 일입니다. 영국생활 5년차 되던 해, 약간의 향수병이 생기기 시작했고 서양문화와 한국문화의 차이점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마침 내가 살던 앞집의 영국 노부부를 자주 보았고 그들로부터 모티브를 얻었습니다.

당시 내가 살던 방이 2층에 있었는데 방에서 건너편 노부부의 집 뜰이 보였습니다. 그 집 아들이 한 달에 한 번 손자를 데리고 밥을 먹으러 왔었죠. 밤 10시 정도 되면 아들과 손자는 집으로 돌아가는데 그때 노부부가 뜰에서 손을 잡고 안녕 해주는 뒷모습을 몇 번 봤습니다.

사실 그 전까지는 한국 사람과 서양 사람의 문화적 공통점이 전혀 없다고, 아니 100%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의 모든 부모들이 자식의 대학시험 때문에 같이 밤을 새우는 것과 넥타이를 메어주는 일은 서양에선 보기 드문 일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노부부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 그래도 몇 개는 공통점이 있구나 싶어 ‘일단 이 사람들이 없는 것부터 써보자’ 하고 가사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막내아들 대학 시험 이런 건 전혀 없다. 부모가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이런 내용은 모두 한국의 부모님을 생각하며 만든 상황이었지요.

 

또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는 노래가 바로 멕시코로 가는 길입니다. 이 노래의 배경과 사연 말씀 부탁드립니다.

1986년도로 기억하는데 영국에서 미국으로 여행을 갔고 샌디에이고 근처 미국과 멕시코 국경 사이에 차를 세우고 잠시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겨 있었습니다.

이 때 황량한 사막에 굴러다니는 선인장 덩굴을 보며 어릴 때 보았던 서부영화의 총잡이가 떠올랐고 은행을 털고 멕시코로 도망가는 주인공의 마음을 가사로 쓰게 되었지요.

한 편의 아름다운 영화를 만드는 생각으로 곡을 만들었습니다. 녹음에 시도는 안했지만 트럼펫이 솔로를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아직까지도 남는 곡입니다.

 

선생님께서 음악을 시작하시던 시절과 지금의 환경을 비교한다면

지금은 많이 편하고 좋아졌지요(웃음). 예전엔 기타를 카피 하려면 레코드판이 닳도록 전축 바늘을 옮겨야 헸지만 요즘엔 인터넷에서 모든 자료나 레슨을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시간절약과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으니 더할 나위 없이 공부하기 편한 시대라 생각하며 대단히 긍정적입니다.

단지 하나 ‘쉽게 번 돈은 쉽게 나단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쉽게 얻은 것은 쉽사리 내 것이 되기가 어렵습니다. 이런 단점을 극복하며 꾸준한 연습과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 분명히 한국 음악의 미래를 책임질 또 다른 인물이 태어날 거라 확신합니다.

 

선생님께서 원하시는 대한민국 음악이 나아가야 할 길과 한국 음악이 어떤 모습으로 거듭나시길 바라시나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지금 한국 음악의 현실은 이런 주제를 논하기에 너무 늦어버린 느낌이 먼저 듭니다. 물론 사람의 기분에 따라 신나게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음악도 분명히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전에 음악이란 사람의 마음을 먼저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쁘건 슬프건 외롭건 힘들건 행복하건, 어떤 기분일지라도 그 음악을 들었을 때 함께 하나가 될 수 있는 그런 무언가가 그 안에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저는 그것을 이행하기에 가장 좋은 도구로 선택한 것이 블루스일 뿐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블루스를 기반으로 하는 뮤지션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연주와 음악은 확연한 차이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한국과 북한, 중국을 제외한 전 세계 사람들이 블루스를 좋아하는 이유가 그것이 가지고 있는 마음을 움직이는 무언가를 알고 즐기고 있기 때문이지요.

여러분이 어떤 음악의 장르를 선택하셨건 그 안에서 사람의 마음을 요동치게 하는 진정한 음악을 창조해 나가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선생님을 사랑하시는 모든 대중들. 그리고 선생님 뒤를 이어나갈 음악인들, 모든 대한민국 국민 분들게 인간 김목경으로써 꼭 전하고 싶으신 말씀 부탁드립니다

마지막 질문이라 그런지 왠지 거창하고 제가 이런 말을 전할 수 있는 입장일까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데요(웃음), 짧고 명료하게 한 마디로 전한다면 ‘좋은 음악 한곡이 사람을 변화 시킵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도 있다는 얘기죠.

그런 음악을 듣고 자란 청소년들이 나중에 이 사회의 중심에 설 때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으며 좀 더 아름다운 사회가 될 겁니다. 당연히 범죄도 줄어 들겁니다. 비트만 강하고 춤을 추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는 음악을 듣고 자란다면 먼 훗날 사회는 왠지 ‘여유와 낭만 없이 메마를 것 같다’라는 느낌을 요즘 자주 받고 있습니다.

음악을 사랑하는 모든 음악인 여러분, 누군가의 인생을 여유와 낭만으로 가득 채워 줄 수 있는 그런 음악을 만드는 음악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