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운드캣 인터뷰] 임백천, 영원한 국민 MC

임백천은 대한민국의 방송인 겸 가수다. 1958년 전라남도 순천에서 3형제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5살때 서울로 상경해 초중고 대학을 다녔다. 1978년 친구 고영선과 함께 참가한 대학가요제에서 장려상을 받으며 가수로 데뷔했고 그 후 특유의 뛰어난 말솜씨 때문에 데뷔 초창기 때부터 주로 예능 프로그램의 MC로 진출했다.

1990년에는 ‘마음에 쓰는 편지’라는 곡으로 가수로서의 전성기를 맞기도 했다. 동시에 대한민국 방송 MC로서 최고의 위치에 올라서며 섭외 1순위 방송인으로 전성기를 이어갔다. 그를 국민 MC로 만들어낸 ‘특종 TV 연예’라는 프로그램에서는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 무대를 장식하기도 했으며, H.O.T가 데뷔했고 당시 최고의 스타들이 출연한 ‘슈퍼선데이’는 시대를 대변하는 예능 프로그램으로 온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최근에는 KBS 제2라디오에서 ‘임백천의 골든 팝스’의 DJ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며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는 국민 MC 임백천을 만나 음악과 함께 살아온 그의 인생 여정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편집자 주>

[국민 MC 임백천]

안녕하세요. 레전드 매거진 독자 여러분, 2019년 황금 돼지의 해가 밝았습니다. 조금은 늦었지만 여러분 모두 행복하고 희망찬 한 해가 되시기 바랍니다. 방송인 임백천입니다.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곁에 따뜻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득 담긴 종이 잡지인 ‘레전드 매거진’이 창간되어 반갑습니다. 앞으로도 진정한 대한민국 문화예술 분야의 레전드 분들의 인생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낼 수 있는 매거진으로 성장하길 기대합니다.

아마 40대 전·후반 분들은 저를 기억하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저는 1978년 제2회 대학가요제에 참가해 가수로 데뷔했고 그 후 TV MC와 라디오 DJ로 활동해 왔습니다. 올 해로 데뷔 41년 차가 되네요(웃음). 당시 대학가요제는 대학생을 위한 최고의 축제이자 스타의 등용문이었습니다.

사실 데뷔 후 계속 방송일을 했던 것은 아니구요, 대학 졸업 후 한 5~6년 정도는 건설 회사에서 직장인으로 일을 했습니다. 전공이 건축이다 보니 건설회사에 취직하게 되었습니다. 당시는 전 세계적으로 중동 붐이 일며 대한민국의 건설 산업이 큰 호황을 이루던 때였죠.

직장인으로 안정적인 월급을 받으며 일을 하던 어느 날, 전문 MC가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서른이라는 나이에 더 늦으면 내 평생 다시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는 오지 않을 것이라는 각오로 건설회사에서 사표를 내고 다시 방송 일에 뛰어들었습니다.

예전 경험을 바탕으로 ‘방송 전문 MC’를 해야겠다는 큰 목표를 가지고 시작했지만 다시 방송 일을 시작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기다림의 시간을 참고 견뎌내며 드디어 저에게도 방송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KBS에서 방영된 ‘광장 마로니에’라는 거리로 나가 사람들과 만나는 예능 프로그램이었는데 그 당시로선 가히 획기적인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소방차’라는 그룹도 이 프로그램에서 데뷔할 만큼 국민들에게 큰 인기를 얻으며 ‘나도 이제 승승장구할 수 있다’라는 확신을 갖고 제가 가진 모든 것을 이 프로그램에 쏟아부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며 시위가 계속되면서 더는 거리 녹화를 할 수 없게 되어 6개월 만에 이 프로그램은 막을 내리게 됩니다.

많은 열정을 쏟아부은 탓인지 그만큼 좌절도 컸습니다. 더 이상 방송을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자괴감에 빠져들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다시 저를 다잡아준 것은 제 인생의 출세작이라 할 수 있는 ’MBC 특종 TV 연예’라는 프로였습니다. 시청률이 40% 가까이 오를 정도로 인기가 있었죠.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당시가 ‘임백천의 전성시대’였네요. TV MC와 라디오 DJ 등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습니다. 오랫동안 방송을 하다보니 TV와 라디오는 비슷하지만 메커니즘이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TV는 아무리 리얼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연출이 가미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라디오는 다릅니다. 나만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이 라디오의 묘미입니다.

청취자분들이 보내주신 모든 사연, 그리고 그 사연에 반응하는 저의 멘트 모두 사실이고 살아있는 말 그대로 ‘리얼 버라이어티’가 펼쳐집니다.

저는 이런 상황을 ‘밤하늘에 활을 쏘는 작업’이라 표현합니다. 어디론가는 날아가는데 어디로 날아가는지 보이지는 않습니다. 누군가는 듣고 있다는 거죠.

최근에는 기술의 발전으로 ‘보이는 라디오’라는 시스템도 생겨 이제 라디오는 더 이상 귀로 듣는 것만이 아닌 시대가 되기도 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요즘 시대에 라디오 듣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 하겠지만 사실은 전혀 다릅니다. 제가 40년 라디오 DJ를 해오며 직접 체험한 사실에 근거해보면 아직도 라디오를 듣는 청취자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습니다.

접수되는 사연의 양을 봐도 실감할 수 있고, 또 참여해주시는 분들의 반응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라디오라는 미디어가 꾸준히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청취자가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고 DJ와 소통할 수 있는 매력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물론 요즘 유행하는 유튜브나 SNS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는 크리에이터들도 엄청나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의 변화에 굴하지 않고 라디오가 그 생명을 탄탄히 이어갈 수 있는 것은 아마 라디오만이 가진 ‘아날로그적 감성’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청취자들은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는 DJ의 목소리를 며칠만 듣다 보면 그 DJ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지, 진심으로 자신의 감정과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지 등 그 DJ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라디오는 연출되지 않은 날 것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이렇게 40년 이상 일을 할 수 있도록 누군가의 선택을 받아오고 있다는 것은 정말 운이 좋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방송인은 누군가가 나를 선택해줘야만 일을 계속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끔 요즘 젊은 스타들을 보면 두려운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과연 내가 지금 데뷔를 했다면 저 쟁쟁한 실력을 갖춘 스타들 사이에서 선택받을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죠. 그만큼 현시대의 문화를 이끌어가는 젊은 스타들은 외모부터 실력까지 모든 것을 갖추고 있습니다. 하물며 가왕 ‘조용필’ 선배님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가왕이라고 인정하는 그 역시 ‘만약 내가 요즘 데뷔를 했다면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을까’라고 겸손한 말씀으로 지금의 스타들에게 극찬을 아끼지 않으셨죠.

말 그대로 지금은 ‘스타의 전성시대’입니다. 그들은 스타가 되기 위해 오랜 시간 단련되고 연마되어 대중 앞에 서게 됩니다. 그들에게서 ‘운’이라는 단어는 통용될 수 없습니다. 오로지 ‘실력’만이 그들이 왜 스타가 되었는지 대변해주죠.

제가 MC를 하면서 지키는 원칙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스타가 되어서는 안 된다’입니다. MC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스텝입니다. 내 프로그램에 출연한 연예인을 진정한 스타로 만들어 내야할 의무를 가진 사람이 MC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바라고 싶은 것은 이제는 100세 시대입니다. 환갑의 나이가 청년이라는 농담도 있죠. 중장년과 노년층의 비율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의 변화’에 맞춰 중장년 등 성인들과 오피니언 리더들이 보며 공감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많이 제작되면 좋겠습니다.

저는 DJ 일을 40년 이상 해왔죠. LP 시대, LP와 CD가 혼재하던 시대, CD 시대를 지나 이제는 디지털 시대입니다. 방송에 필요한 노래는 모니터에서 끌어당기기만 하면 스튜디오에 장착이 되죠. 예전에는 디스크 라이브러리에 가서 많은 음반들 사이에서 앨범을 찾아들고 다시 스튜디오에 와서 턴테이블에 걸고 ‘스탠바이’를 하던 번거로운 일이 앉아서 마우스 몇 번 움직이면 되는 시대가 됐습니다.

바야흐로 디지털 시대입니다. ‘디지털’이라는 한 단어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대변합니다. 세계적인 변화고 현실이기에 분명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디지로그’를 지향합니다.

디지털을 이해하려 애쓰고 있으면서도 대부분의 생활은 오프라인에서 이어가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사람 사는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수년 안에 오프라인 시장이나 마트가 없어지고 온라인으로만 장을 볼 수 있는 시대가 올 수도 있겠죠. 몸은 편할 수 있겠지만 아날로그와 결별을 하는 그 마음만큼은 더 무거워지는 현실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젊은 세대를 이해하고 하나가 되기 위해 노력을 하는 편입니다.

현재 KBS 제2라디오에서 ‘임백천의 골든 팝스’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전 11시부터 12시까지 추억의 골든 팝스와 함께 청취자들의 사연을 전하는 감성 프로그램입니다. 이희옥 PD, 최진영 작가와 같이 음악을 아끼고 진심으로 사랑하는 최고의 스텝이 함께 만들어내는 프로그램이기에 더욱 애착을 가지고 방송에 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지난 10월 첫 방송을 시작한 ‘임백천의 골든 팝스’가 어느새 100일이 지났습니다. 사실 ‘골든 팝스’라는 프로그램은 10년 전 동일한 제목으로 5년 이상 방송을 한 적이 있는 프로그램으로 많은 청취자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때의 마음을 담고 다시 시작하는 기분을 살리기 위해 시그널 음악도 당시와 동일한 시그널 음악으로 방송이 시작됩니다.

저는 지금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아직도 저를 선택하고 제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고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한 거니까요.

이 땅에 청춘의 아픔을 겪고 있는 모든 분들께 당부하고 싶습니다. 지금이 지옥처럼 헤어나고 싶은 현재일 수도 있지만, 먼 훗날 미치도록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의 시간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현재 본인의 모습에 좌절하지 말고 부서지고 깨지는 청춘을 즐기라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청춘들은 건국 이래 최고의 스펙을 가지고 있습니다. 절대 자신을 낮게 평가하고 고개 숙일 필요가 없다 강조하고 싶습니다.

나이 드신 분들이 항상 하시는 말씀이 있죠. ‘맨몸 하나로 이뤘다’라고 술 한잔에 추억을 삼키며 토로하시곤 합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맨 몸으로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와 맞짱 떠야 합니다. 뜨거운 열정으로 우뚝 서고 여러분의 강한 어깨에 대한민국을 올려놓고 지금보다는 더 나은 나라로 만들겠다는 패기를 마음껏 펼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다음 세대에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전해줄 때는 지금 건네받은 대한민국보다는 조금 더 높은 위치에서 후세에 전해주고 싶다는 욕망을 품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건국 이래 최고의 조건을 갖추신 우리 대한민국 열혈 청년들에게 깊은 찬사를 보내며 2019년 새해에는 크게 아프지 마시고 웃을 일 많이 만드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