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톤 W80, 듣는 순간부터 사랑을 느끼게 되는 작은 이어폰 하나

웨스톤(Westone) W80

듣는 순간부터 사랑을 느끼게 되는 작은 이어폰 하나

글.사진 : 루릭 ( luric.co.kr , @LuricKR )

여러분이 고가의 인이어 모니터를 선택할 때 듣기 편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선명한 소리를 지목한다면, 아주 쉽게 웨스톤(Westone)을 떠올리게 될 것입니다. 참 오랫동안 일관적으로 소리의 명확한 개성을 지키면서 많은 팬을 거느려온 웨스톤인데요. 채널당 BA 8개를 탑재한 W80의 등장은 예상 밖이었습니다. 다른 업체에서 BA 숫자를 아무리 늘려도 6개에서 시간을 멈춘 웨스톤이었으며, W60과 ES60의 소리가 충분한 만족감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웨스톤은 밸런스드 아머처 기술을 매우 중시하면서도 드라이버 숫자는 그들이 생각하기에 딱 필요한 만큼만 넣어왔습니다.

사실 이 점에는 인체 공학의 요건도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저는 여태껏 몰랐는데 웨스톤에는 IEM 마스터 디자이너인 칼 카트라이트(Karl Cartwright)와 더불어 그의 쌍둥이 형제인 크리스 카트라이트(Kris Cartwright)가 있습니다. W80의 소리 감상문을 모두 작성한 후 두 명의 인터뷰 영상을 보게 됐는데, 크리스 카트라이트는 W 시리즈의 하우징 디자인을 했답니다. 그가 인이어 모니터의 하우징 디자인에서 중시하는 것은 모든 귀 모양에 맞춰지는 형태와 매우 편안한 착용감입니다.

“외모는 판박이인데 형제의 성격은 완전 다르신 듯!”

웨스톤의 유니버설 IEM은 멀티 BA 이어폰 중에서는 하우징 크기가 매우 작은 편이라서 드라이버 숫자를 추가하는 것 자체가 논외였던 겁니다. 그러나 칼 카트라이트는 여태껏 출시된 웨스톤 이어폰에서 또 다른 발걸음을 내딛기 위해 고음으로 시선을 돌렸습니다. 그 결과는 현재 수많은 인이어 모니터들이 저음 쪽에 더 많은 드라이버를 배치하는 경향과 완전히 다른, 쿼드 하이(Quad High) 구조가 되었습니다. 쉽게 생각해보면 W50, W60과 유사한 듀얼 미드, 듀얼 로우 기반에서 고음이 크게 확장된 소리가 나올 것으로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소리를 들어보면 ‘오호~, 이것 참 물건이로세~’하실 겁니다.

크고 화려한 패키지, ALO Audio 케이블

W80은 웨스톤의 유니버설 IEM 모델 중 최고가의 제품이며 다른 모델보다 액세서리가 훨씬 많습니다. 이미 W80의 소리를 충분히 들어본 후 완전히 매료된 저의 생각으로는 이어폰 본체 만으로도 비싸게 팔 수 있을 듯 한데, 패키지가 무척 화려하고 이것 저것 든 것이 많아서 인심 좋은 가게 주인을 만난 기분이 듭니다. 일단 박스를 보세요. 크기가 다릅니다.

위 아래의 뚜껑을 열면 오렌지색 박스 겉으로 칼 카트라이트의 ‘소리에 대한 생각’이 서술되어 있습니다. 음~하고 읽어본 후 박스 속을 보니 큼직한 하드 케이스가 있습니다. 실용성을 매우 중시한 케이스인데요. 지퍼를 열어보면 내부가 오밀조밀한 격벽으로 분할되어 있습니다. 위쪽에는 이어팁이나 페이스 플레이트를 보관할 수 있고, 아래쪽에는 이어폰 본체와 또 다른 하드 케이스를 보관합니다. 벨크로를 사용해서 격벽을 탈착하여 유저가 원하는 구성으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전체 구성품을 살펴봅시다. W80 이어폰 본체, 스마트폰용 MFI 케이블, ALO Audio 레퍼런스 8 케이블(과 전용 파우치), 대형 하드 케이스, 소형 하드 케이스, 다수의 실리콘팁과 폼팁, 4쌍의 컬러 페이스 플레이트, 페이스 플레이트 분리 장착에 쓰는 육모 렌치, 귀지 청소 도구가 있습니다. 네, 많습니다. 많아요. 사진 찍으려고 테이블에 펼쳐서 정리하기가 번거로울 정도입니다.

웨스톤은 전통적으로 오렌지색 모니터 볼트 케이스를 제공해왔으나 W80은 확실히 예외입니다. 대형 케이스에는 이어폰만 담는 게 아니라 한 쪽 격벽을 재구성해서 뮤직 플레이어나 휴대용 헤드폰 앰프를 담을 수 있게 했답니다. 이어폰만 휴대하고 싶다면 소형 하드 케이스를 사용하면 됩니다. 그리고… 이제 군침 도는(?) 가장 훌륭한 W80의 액세서리를 살펴봅시다. 바로 ALO Audio의 케이블입니다.

커스텀 인이어 모니터를 좋아한다면 당연히 고급형 커스텀 케이블에도 관심이 많으실 터인데, ALO Audio의 이름을 처음 듣는 경우는 없으리라 예상합니다. 같은 무산소 동선도 ALO Audio 제품들은 가격이 꽤 비싸기 때문에 직접 소리를 들어보지 않는 한 그 가치를 평가하기가 어렵습니다. 이 케이블은 웨스톤의 협력 하에 W80을 위해서 만들어졌다고 하지만, 슬림한 플러그의 MMCX 커넥터를 쓰므로 다른 인이어 모니터에도 연결할 수 있습니다. 별도로 구입하면 케이블 가격만 300~400달러 정도인 제품인데 웨스톤 W80 덕분에 조금 더 할인된 값으로 세트 구매를 하는 셈입니다. 그리고 이거 중요합니다. 이 케이블이 소리에 주는 긍정적 영향이 꽤 강하거든요. W80에 연결해봐도 MFI 케이블보다 훨씬 좋은 소리를 들려주며, 시험 삼아 ES60에 연결해보니 W80에 작용했던 영향이 거의 그대로 반영되었습니다. 이 제품은 이어폰의 음색을 바꾸지 않으며 소리의 심리적 공간감과 입체감을 향상시켜주는 케이블이라고 판단 중입니다.

그렇다고 W80에 포함된 MFI(애플 기기 호환) 케이블이 소리에 악영향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ALO 케이블이 더 좋게 만들어 주는 것이지요. 스마트폰에 연결해서 들을 때는 MFI 케이블로 편리하게 사용하고, 고해상도 재생기에 연결할 때는 ALO 케이블로 더욱 즐거운 소리를 들으면 됩니다. 그리고 한 가지 알려드릴 점이 있는데 이어폰의 커스텀 케이블은 대체로 선재가 더 굵거나 단단한 편입니다. W80의 레퍼런스 8 케이블은 비교적 가벼운 편이지만 일반적인 이어폰 케이블보다 훨씬 단단하기 때문에 이동 중 사용하면 철사가 튀는 듯한 소리가 들릴 수 있습니다. 되도록 자리에 앉거나 동작을 멈춘 상태에서 감상하시기 바랍니다.

W80의 하우징 크기는 W60보다 불과 1mm가 더 길다고 합니다. (노즐이 있는 앞쪽이 조금 더 길게 되어 있음) 크리스 카트라이트의 언급에 따르면 페이스 플레이트도 C자 모양이 아닌 J자 모양의 작은 것으로 바꿨는데요. 이 또한 초소형의 하우징 속에 8개의 BA 유닛을 담기 위한 배려입니다. 페이스 플레이트는 기본 포함되는 육모 렌치로 후면 나사를 살짝 풀면 쉽게 교체할 수 있습니다.

SOUND

Driver : 8 Balanced Armature Drivers with 3-Way Passive Crossover (4 High, 2 Mid, 2 Low)

Sensitivity : 111 dB

Frequency Response : 5 ~ 22,000 Hz

Impedance : 5 ohms

*W80에는 ALO Audio 레퍼런스 8 케이블을 연결했으며 중간 사이즈의 STAR 실리콘팁(기본 장착된 것)을 사용했습니다. 실리콘팁 대신 회색 폼팁을 끼우면 중저음이 늘어나고 고음이 조금 낮춰지니 참조해둡시다.

웨스톤 이어폰을 계속 사용해왔다면, 웨스톤의 팬을 자처한다면, W80의 소리는 모든 면에서 ‘완성’이라고 느끼실 듯 합니다. 또한, 웨스톤 이어폰을 써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W80의 소리를 처음 들어보면 즉시 매료되면서 대단히 친숙하게 느껴지는 면모가 있습니다. 그래서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지 않을까 예상 중입니다. 그럼, 소리 감상문을 쓰기 전에 제품의 기본 특징을 살펴보죠.

*얕은 언덕 두 개의 모양, 웨스톤 이어폰 중에서는 가장 플랫한 느낌

제가 웨스톤의 W60과 ES60을 모두 접하고 느낀 점은, 일반 커널형 이어폰과 커스텀 이어폰의 구조 차이가 크다는 것입니다. 2개의 큰 보어(Bore)를 뚫고 노즐 모양을 청취자의 외이도 형태에 맞춘 커스텀 이어폰 ES60의 소리는 W60보다 밸런스가 좋으며 낮은 고음과 높은 고음이 모두 선명하게 들립니다. 반대로 W60은 낮은 고음의 양이 적으며 중저음이 더욱 강하게 들리지요. 그래서 W80의 소리를 처음 듣기 직전까지도 W60처럼 굴곡이 있는 소리를 예상했습니다. 이미 짐작하셨겠지만 제 예상은 완전히 틀렸습니다. 놀랍게도 W80의 소리는 굴곡이 거의 없었고 강하게 튀어나온 부분도 없었습니다. 만약 커스텀 핏의 ES80이 나온다면 그 소리가 대단히 인상적일 것이라 예상합니다. W80은 W60과 달리 고.중.저음의 균형이 정밀하게 맞춰져 있으며, 고음과 저음을 넓은 폭으로 완만하게 강조합니다. 제품 박스에 그려진 양 옆으로 넓게 늘린 주파수 응답 형태를 좁게 오므려서 본다고 상상해보세요. 얕고 매끈한 능선의 언덕 두 개가 나올 듯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웨스톤 이어폰 중에서는 가장 플랫한 느낌을 받게 될 것입니다.

*누구나 곧바로 좋아할 수 있는 소리

또 다른 특징은 재생기나 음악 파일을 가리지 않는다는 겁니다. 뭘 들어도 부드럽고 편안한 웨스톤 사운드로 만들어서 즐겁게 들려줍니다. 이 글의 끝에서 언급하겠지만 W80은 놀라운 성능을 갖췄으면서도 절대로 매니악하지가 않습니다. 누구나 곧바로 좋아할 수 있을 법한, 아주 쉽게 다가설 수 있는 소리를 들려줍니다. 단, 감도가 상당히 높은 이어폰이라서 재생기나 앰프의 노이즈를 강하게 드러내며, 옛날에 녹음된 음악 파일도 배경 노이즈가 생생하게 드러납니다. (예: LP를 CD로 다시 녹음한 음반) 그리고 임피던스가 5옴에 불과하므로 헤드폰 앰프를 연결할 때는 임피던스 매칭이 까다로울 수 있겠습니다. 게인(Gain) 옵션이 있는 DAP를 쓴다면 게인을 낮추고, 매우 낮은 임피던스 수치에 최적화되지 않은 헤드폰 앰프를 쓴다면 32옴 정도의 저항 어댑터를 연결하기 바랍니다. W80의 고해상도 성능을 모두 뽑아내기는 어렵지만 일반적인 아이폰, 안드로이드폰의 헤드폰 출력에 바로 연결해도 30% 수준의 볼륨으로 즐거운 음악 감상을 할 수 있습니다.

*높은 해상도와 분리도를 제공하면서도 고막을 강하게 누르지 않는다

청각에 부담을 주지 않습니다. 더욱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소리의 ‘무게’를 줄여서 공기 중에서도 더욱 가벼운 기체로 만듭니다. 고음, 중음, 저음이 모두 가벼운 무게로 내려오면서 고막을 쓰다듬은 후 잔향을 남기며 곱게 흩어지는 느낌을 줍니다. 제품 사양으로는 분명히 음압 레벨이 높은 이어폰이지만 사운드 튜닝에서 고막을 강하게 누르는 소리를 피하고 있습니다. 높은 해상도와 분리도를 제공하면서도 여전히 오래 들을 수 있는 편안한 소리를 만들었다는 점이 놀랍군요. JH 오디오, UE 등의 IEM을 사용 중이라면 여전히 응답 느린 소리로 들릴 것입니다.

이 점은 웨스톤의 칼 카트라이트가 절대로 타협하지 않는 부분인 듯 합니다. 진정한 하이엔드 제품으로써 초고해상도 IEM을 만들어도 진공관 앰프 같은 아날로그 질감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몇 시간을 들어도 부담이 없으니 오히려 청각 보호를 위해 감상 시간을 조절해야 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조차도 볼륨을 낮춰서 들으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진지한 오디오 애호가의 감상을 위한 하이엔드 이어폰이지만 생활의 배경 음악용 이어폰으로도 최적이며 앰비언트 음악이나 창의력 향상에 도움을 주는 백색 소음을 재생하는 용도에도 좋겠습니다. W80은 볼륨만 알맞게 조정해서 듣는다면 당신의 청각을 절대로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 장담합니다.

*충격적일 정도로 드넓은 고음 재생 능력

웨스톤 매니아가 W80의 소리를 듣는다면 처음으로 접하는 선명하고 시원한 고음에 놀랄 것입니다. 정말 웨스톤 이어폰 만을 기준으로 한다면 밝은 고음처럼 들릴 확률도 높습니다. 그러나 W80에 탑재된 4개의 고음 유닛은 고음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초고음으로 인한 공기의 존재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라고 봅니다. 고해상도 파일 감상의 묘미가 있습니다. 혹시 다른 회사의 인이어 모니터를 보유 중이어서 비교 청취를 해본다면 W80의 고음이 얼마나 잘 다듬어져 있는지 깨닫게 될 겁니다. 높은 중음부터 초고음까지 크게 확장이 되어 있는데 낮은 고음은 약간 낮춰져 있으며 10kHz 주변부터 지속적으로 강조되는 느낌이 듭니다. W4부터 ‘웨스톤이라면 언제나 따뜻한 중저음’이라고 생각해왔다면 W80의 드넓은(!) 고음 재생 능력은 자못 충격적일 것이라 예상합니다.

*소리의 넓은 공간감과 입체적인 방향

W80은 주파수 응답의 형태를 통해 소리의 넓은 공간을 형성합니다. 또한, 소리가 여러 방향에서 들려오는 듯한 입체감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ALO Audio의 레퍼런스 8 케이블을 사용하면 이 특징이 크게 강화되는데요. 고.중.저음을 리니어(직선) 형태로 연결해서 하나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고음, 중음, 저음으로 최대한 분리하여 각각의 디테일에 집중하도록 만듭니다. 멀티 BA 이어폰의 개발 방향이 회사마다 서로 다르다는 점을 인지해둡시다. 이렇게 각 음역을 강하게 분리하면 그만큼 산만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반대로, 다채널 스피커로 감상하는 듯한 입체감에 즐거워질 수도 있습니다. 요즘은 다수의 100~200만원대 인이어 모니터들이 리니어 타입의 소리(다수의 유닛을 써도 한 개의 풀레인지 드라이버처럼 느껴짐)를 지향하고 있으므로 강한 입체감은 W80의 차별점이 되겠습니다.

*훌륭하게 조율된 고음

고음의 튜닝이 저의 기준에서는 거의 완벽하다고 봅니다. 쉽게 분류해서, 고음을 ‘자극적인 것’과 ‘심심한 것’으로 나눈다면 이상적인 고음은 자극과 심심함의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측정으로도 보장될 수 있는 초고음을 재생하되 음색적 왜곡이 없고 청각에 공격적이지도 않은 고음을 만들어야 합니다. 제 생각에 W80이 나오기까지 칼 카트라이트가 제일 고심한 부분은 고음 튜닝이었을 것입니다. (이 감상문은 그의 인터뷰 영상을 보기 전에 이어폰의 소리만 듣고 작성한 것입니다.) W80의 고음은 귀에 달콤하게 착 감기는 맛이 있으면서도 음색이 밝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고음 악기의 디테일을 하나씩 명확하게 짚어주면서도 청각으로 지나치게 많은 정보가 쏟아져 들어온다는 생각도 들지 않습니다. (고음의 많은 정보량은 고음의 공격성과 연결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여전히 가까운 목소리지만 과도하게 가깝지는 않다

W50, W60보다 W80의 중음은 아주 조금 낮춰진 듯 합니다.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고음, 저음보다 중음의 양이 적다는 것입니다. 저는 ‘보컬이 가깝게 들리는 이어폰’으로 항상 웨스톤 이어폰을 권하고 있습니다. W10, W20은 중음 비중이 상당히 높으며 W30도 고.중.저음이 모두 강조된 형태를 보입니다. (주파수 응답 형태가 W자처럼 느껴짐) 아마도 W80은 W 시리즈 중에서 중음 균형이 가장 좋으리라 예상합니다. 레코딩을 할 때 마이크 가깝게 노래를 하고 마스터링할 때 그 특징을 살려서 만든 음반이라면 가수의 목소리가 귀 바로 옆에서 들릴 것입니다. 단, 다른 W 시리즈처럼 귀에 숨결 불어넣는 정도까지는 아니라는 뜻입니다. 아주 가까운 목소리이지만 그 거리가 과도하게 가깝지는 않습니다. 또한 중음이 고음, 저음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아서 중음의 두텁고 풍만한 선이 그대로 살아납니다.

*빠르고 탄탄한 펀치의 기체 같은 저음

웨스톤 특유의 부드럽고 따뜻한 저음을 들려주되 응답 속도가 더 빠르고 탄탄한 펀치를 지향합니다. 진동처럼 웅웅거리는 50Hz 이하의 초저음도 명확하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앞서 W80의 소리가 마치 공기보다 가벼운 기체 같은 성향을 보인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점은 W80의 저음 재생에도 큰 영향을 주는데, 저음이 덩어리나 액체의 형태가 아니라 기체의 형태에 가깝습니다. 고.중음보다 아래쪽으로 낮게 깔리는 저음이지만 단단하게 뭉쳐있거나 균일하게 흐르지 않고 부드러운 구름처럼 층을 이루면서 공중에 살짝 떠있군요. 혹시 진중한 성향의 저음을 원하신다면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

*여러 음악 장르에서 각각의 즐거움이 있다

W80에서 음악 장르의 선택은 생각보다 훨씬 간단합니다. 어떤 장르든 90% 이상의 만족감으로 감상할 수 있는데 음악의 성격에 따라 선택을 하게 됐습니다. W80으로 락이나 메탈을 들으면 격렬한 느낌이 적어서 심심할 수 있겠으나 하이햇 심벌즈 소리가 대단히 시원하며 베이스 드럼 타격도 든든해서 충분히 즐겁습니다. 옛날 재즈 음반을 감상한다면 소리의 기체 같은 가벼움이 어색할 수 있겠으나 역시 심벌즈 소리가 시원하고 더블 베이스 연주 감촉이 생생하게 드러나서 충분히 즐겁습니다. 발라드, 알앤비 장르는 W80과 천생 연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부드러운 질감의 풍만한 중음과 저음이 사람 목소리를 너무나도 듣기 좋게 만들어주며 보컬의 고음 부분도 깨끗하게 살아나니 어느새 미소를 띄우게 됩니다. 원래는 음악 장르를 선택할 때 격렬하고 거친 느낌이 필요한 곡에는 W80이 너무 부드럽다고 말할 생각이었는데 결국 틀렸군요. ‘모든 장르의 음악을 완성된 웨스톤 사운드로 모두 만족스럽게 듣는다’고 결론을 내리겠습니다.

그리고 대편성 오케스트라 연주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넓은 콘서트 홀에서 녹음된 오케스트라 연주를 인이어 모니터로 전달하려면 저음을 초저음까지 깊게 강조해야 하며 중음의 일부 영역을 낮추고 고음은 초고음 영역만 일부 강조해줘야 합니다. 이에 대한 이론적 근거는 없지만 라우드 스피커 느낌을 이어폰에서 내려면 주파수 응답을 이런 식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웨스톤은 상급 이어폰에서 라우드 스피커 소리를 묘사해왔는데 W80은 다릅니다. 계속 들어보면 고음과 저음이 모두 완만하게 강조됐는데 저음보다 고음의 비중이 약간 더 높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운드 튜닝에 반영된 ‘강한 입체감’과 ‘넓은 공간감’이 라우드 스피커의 느낌을 재현합니다. 쉽게 정리하면 W80의 소리는 라우드 스피커에 근접하면서도 고음이 더욱 선명합니다. 이렇게 되니 오케스트라의 규모와 악기 연주 방향, 연주 회장의 공기 등을 모두 전달 받으면서 동시에 고음 악기들이 화사하게 빛을 냅니다. 또, 중저음 악기들은 더욱 두텁고 부드러운 선으로 다가옵니다. 이 경험을 제가 감상해봤던 라우드 스피커로 떠올린다면 프로악(ProAc)의 고급형 라인업에 가까운 인상을 주었습니다.

마음의 장벽을 허무는 즐겁고 편안한 소리

고가의 인이어 모니터에 대한 감상문을 쓰게 되면 보통은 진지한 자세를 취하기 마련입니다. 평소에는 비발디의 곡을 들으며 핑크빛 하트 뿅뿅을 띄우다가도 갑자기 번스타인 지휘의 말러 교향곡 같은 태세 전환(?)을 하게 된다는 겁니다. 이것은 인이어 모니터의 소리로부터 되도록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려고 하는 청취자의 심리적 자세가 주요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인이어 모니터의 소리 성향도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리뷰어이면서도 마음을 편하게 먹고 덜 진지하게 접근하고자 노력하고 있으나 비싼 이어폰의 감상문을 쓰게 되면 반사적으로 진지해지게 됩니다. 하이엔드 인이어 모니터는 다른 이어폰보다 귀로 들어오는 것의 양이 많으며 그만큼 청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닙니다. 청각 피로를 줄이기 위해 튜닝된 하이엔드 인이어 모니터도 제법 많아요.)

이러한 점에서 저는 W80이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게 되리라 짐작합니다. W80은 소리를 생생하게 전달한다는 성능적 측면에서 분명한 하이엔드인데 처음 듣고 나중에 들어도 자꾸만 마음이 즐겁고 편안해집니다. 진지한 표정을 지을래야 지을 수가 없고, 소리를 들을수록 ‘아흥~’하면서 이어폰에게서 ‘사랑’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편안한 소리로 치유하는 이어폰일 뿐만 아니라 아직도 세상이 아름다우며 어딘가에는 사랑이 가득하다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아무리 힘들고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W80을 귀에 끼우고 음악을 재생하면 곧 누그러지면서 마음 속에 작은 희망을 품게 되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