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INTERVIEW] 박세원, ‘사운드캣’ 총괄 기획 본부장

[사운드캣]

사운드캣 은 2005년 설립되어 전 세계적으로 우수한 음향기기를 한국에 공식 수입·유통하는 기업이다. 사운드캣은 그동안 국내 ‘커스텀 인이어’ 시장을 주도하며 혁신적인 ‘프로 오디오’와 ‘오디오 디바이스’를 유통하며 오디오 산업 전반과 국내 음향 업계의 성장에 기여하고 있다.

국내 사용자가 원하는 해외 음향기기 브랜드를 지속적으로 발굴·유통해 세계가 인정하는 한국의 선두적 디스트리뷰터(Distributor)로 자리매김하며 대한민국 최고의 아티스트들과 함께 한국 음향 산업의 미래를 만들어 가고 있다.

커스텀 인이어, 오디오 디바이스, 미디, 프로오디오 등 음향산업 시장의 핵심이 되는 4가지 주요 사업분야를 기반으로 대한민국 음향 시장의 고품격화를 선도하는 사운드캣을 이끌고 있는 박세원 본부장을 만나 음악과 함께 해 온 그의 삶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박세원, 사운드캣 총괄기획본부장]

먼저 사운드캣 ‘LEGEND 매거진’ 독자 분들께 인사 말씀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사운드캣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께 이렇게 인사드릴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운드캣 ‘LEGEND 매거진’ 창간을 축하드립니다. 저는 사운드캣 COO 박세원입니다. 

저희 사운드캣이 탄생한 지 벌써 14년째를 향해가고 있는데, 사운드캣에서 야심 차게 준비한 ‘LEGEND 매거진’ 창간이 그간 한국의 음향 시장을 선도해온 사운드캣의 많은 노하우와 인적 네트워크를 잘 활용할 수 있는 발판이 되어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시각의 콘텐츠를 보

여줄 수 있기를 진심으로 희망합니다. 

본부장님과 사운드캣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셨나요?

사운드캣과의 인연은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사운드캣의 창업자인 박상화 대표님과의 만남으로부터 시작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저희 광운대학교 그룹사운드 ‘페가수스’에서 선후배 사이로 대표님을 알게 되었는데 사실 그때는 워낙 높으신 선배님이라 말도 제대로 못 했었지요.

그리고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의 카리스마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존재였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제가 군 제대 후 IT 관련 업종에서 웹 프로그래밍을 하면서 종동 대표님의 일을 도울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저의 업무능력과 태도를 대표님께서 높이 평가해 주신 것 같습니다.

사운드캣 이전에 저는 2004년부터 2010년까지 7년 가까이 삼성전기의 ‘기판선행개발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었습니다. 많은 한국인들이 꿈의 직장이라 생각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대기업에 다니며 큰 자긍심을 가지고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톱니바퀴 같은 생활에 염증을 느끼게 되었고 예전부터 간직한 꿈을 이루기 위해  새로운 시작을 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때 마침 저의 손을 잡아주신 분이 사운드캣 박상화 대표님이시고 이를 계기로 사운드캣에 합류해 10년 가까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사운드캣 입사 전 본부장님의 삶은 어떠하셨을지 궁금합니다.

저의 어린 시절은 그다지 평범하지 않은 일상들의 연속으로 기억합니다. 돌잔치 무렵에 심각한 전신화상을 입어 죽다 살아났고, 화상의 흉터와 후유증 때문에 고등학교 때까지 반바지를 못 입을 정도였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당시만해도 신체검사할 때 남녀 친구들이 다 모여 있는 상태에서 팬티만 입고 검사를 했는데, 화상의 상처 때문에 저에게는 너무나 힘들었던 아픈 기억이었고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리고 제 외모 중에 귀가 약간 특이한 모양이라 어린 시절부터 당나귀니 외계인이니 놀림을 많이 받아서 그런지 어린 시절에 좀 암울한 기억들이 많습니다. 지금에야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때 그런 저의 처지가 너무 싫어서 자연스럽게 공부라도 열심히 하자라는 다짐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뭐라도 잘해야 그런 소리를 안 들을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죠.

이렇게 공부와 다른 여러 가지를 잘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는지 ‘음악’이라는 분야와도 자연스럽게 인연이 만들어질 기회가 생겼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 교회 성가대를 하면서 음악에 대한 흥미를 가졌고 그냥 재밌게 즐기다 보니 자연스럽게 노래를 할 기회도 많아졌습니다. 

중학교 3학년 때 음악 선생님의 권유로 참가한 성악 콩쿠르에서 수상을 해 음악이라는 분야에 더욱 자신감을 얻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도 꾸준히 중창단에서 활동하면서 남양주 시내 많은 교회 무대에 서며 음악에 대한 경험을 탄탄히 다지게 됩니다.  주변에서는 성악을 전공하라는 권유가 있을 만큼 저의 실력도 향상되었지만 저희 집안 형편 때문에 일찌감치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대학에 진학해 뭔가 삐뚤어지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였는지 저는 헤비메탈 밴드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미션스쿨이었던 저희 고등학교에서 선교부장까지 맡으며 친구들에게 ‘메탈리카’의 음악은 사탄의 음악이니 듣지 말라고 종용하던 제가 메탈그룹을 하게 되었으니 정말 많이 삐뚤어진 거죠. 그로부터 1년 뒤 저는 ‘오지 오스본’의 ‘Crazy Train’을 연주하고 있었죠.(웃음)  

요즘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하며 그룹 ‘QUEEN’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는데, 1997년도 상명대학교 축제에서 QUEEN의 ‘Don’t Stop Me Now’를 연주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살아나네요. 

이렇게 메탈과 함께 시작했던 저의 대학 시절을 잠시 뒤로 하고 저는 군에 입대했습니다. 11사단 군악대에서 복무했는데 당시 저의 꿈이 작곡가라 1년 넘게 틈틈이 작곡 연습을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현역 작곡가로부터 돈이 없으면 작곡가로 데뷔할 수 없다는 말을 듣고 포기했고, 군 복무를 마치고 저는 어린이 뮤지컬의 음악을 만드는 작곡 아르바이트를 1년 정도 했었습니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예전에 삼성전기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던 시절의 일상은 정말 단조로운 하루하루의 연속이었습니다. 연구원으로 계속 남고 싶지는 않아 틈틈이 여러 분야의 일들을 공부하며 새로운 삶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연구소에 일본인 연구원들이 많아서 자연스럽게 일본어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취미삼아 일본어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그런 저를 눈여겨 보던 한 일본인 연구원이 저를 일본인 연구원 전담자로 추천하여 사내 일본어학당에서 10주간 합숙 교육을 받고 일본인 연구원을 3년정도 상사로 모셨던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아마 없어진 것으로 알고 있는 삼성그룹의 신입사원 연수에서 ‘전자계열 응원단’으로도 활동하며 그룹 지도 선배로 신입사원을 가르치기도 했던 인연으로 ‘삼성 인력개발원’으로 이직하고자 하는 계획이 있었는데, 근무년수를 일정기간 넘겨야하는 조건이 있어서 년수를 채우지 않고 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틈틈이 해온 공부들이 저에게는 많은 기회를 주면서 더욱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지만 단조로운 일상을 이겨내지 못한 저는 지쳐있는 저의 몸과 마음을 살리기 위해 미련없이 회사를 떠나게 된 것이죠.

그 당시 저는 정말 연구원이라는 직업과 업무에 대해 더 이상 큰 관심과 기대를 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저는 연구와는 관련 없는 일들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당시 ‘인텔’과 6년 뒤 출시 예정인 ‘CPU’와 ‘머더보드’를 연결해주는 ‘FCBGA’라는 부품에 들어가는 ‘초미세회로개발팀’에서 진행했던 연구 프로젝트가 아마 유일하게 흥미를 가지고 했던 일 같습니다. 하지만 2008년도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발발하면서 인텔이 프로젝트를 중단하게 되었고, ‘다시 업무에 흥미를 잃어버리게 되어’ 이를 계기로 퇴사 후 지금의 사운드캣으로 오게 된 것입니다. 

본부장님께서 현재 가장 주력하시는 사운드캣의 업무는 어떤 것인가요?

현재 저는 사운드캣에서 ‘총괄기획본부장’이라는 타이틀답게 총괄적인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위로는 대표님의 큰 목표와 지시를 세부 목록화해 보다 구체적으로 정량적인 상세 플랜을 세워 직원들에게 공유합니다. 그리고 아래로는 직원들이 각자의 포지션에서, 또는 그 포지션이라는 한계를 넘어 자신의 잠재력을 표출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사운드캣에 처음 입사했던 2010년에는 직원이 고작 5명 정도였으나 지금은 거의 50명에 육박하다 보니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긴 합니다.(웃음) 그렇지만 그럴수록 더욱 직원 개개인이 만족할 수 있는 회사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 외에는 주요 브랜드들과 일부 조직운영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며 전반적인 사운드캣의 모든 일을 총괄하고 있습니다.

본부장님께서 담당하고 계신 ‘웨스톤’은 어떤 브랜드인가요? 가급적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업무보다는 지원하는 역할을 더 강화하려고 합니다만, 브랜드의 중요성과 시기성 등의 몇 가지를 고려할 때 불가피하게 직접 관리하는 브랜드들이 몇 개 있고 그중에 하나가 바로 웨스톤입니다. 

사실상 영업과 유통을 담당하고 있지는 않고 웨스톤의 브랜드 전략을 세우고 직원들과의 협조하에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웨스톤은 사운드캣이라는 회사가 탄생하면서 처음 수입한 이어폰 브랜드이기에 다른 브랜드들과는 의미가 남다릅니다. 

사운드캣이라는 회사의 시작이 곧 웨스톤 인 셈이죠. 지금은 고가의 이어폰들이 워낙 많이 나와있지만 2005년 당시만 해도 웨스톤이라는 이어폰은 그야말로 한국 프리미엄 이어폰 시장에서 한 획을 그은 사건이었다고도 볼 수 있었습니다. 사운드캣이 시장의 선도자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부분이 바로 이런 이유입니다.

1959년 미국 콜로라도에서 탄생한 웨스톤은 70년의 역사를 가진 회사이며 사운드캣과도 어언 14년을 함께 해온 매우 중요한 브랜드입니다. 커스텀 인이어를 최초로 개발한 회사이기도 하고 경쟁 브랜드인 ‘슈어’의 첫 인이어를 개발해준 회사도 바로 웨스톤이죠. 

그 이후 세계 최초의 쿼드·펜타·헥사·옥토 드라이버 등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갖춘 회사이기도 합니다. 제가 2011년도부터 한국의 가수들에게 커스텀 인이어를 집중적으로 소개하면서 한때 웨스톤의 커스텀 시장 점유율을 70%까지 점유했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 정도로 한국의 커스텀 인이어 시장을 키우는데 큰 도움을 준 브랜드이기도 합니다. 

웨스톤과 관련해 현재 추진 중인 이벤트 또는 프로젝트가 있으신지요?

앞선 답변에서 한때 한국 가수들의 커스텀 시장 점유율이 70% 이상 되었던 적이 있다고 했는데 거기에는 전략적인 요인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그때 당시에도 세계적인 메이저 커스텀 브랜드인 UE, Westone, JH audio에서 유니버설 라인업을 보유하고 있는 브랜드가 웨스톤밖에 없었기에 저의 전략은 가수들이 모두 웨스톤 커스텀을 사용하게 된다면 그들의 팬도 웨스톤 이어폰을 사용하게 될 것이라는 단순한 전략이었습니다.

물론 그런 부분이 유효했던 점도 있었겠고 프리미엄 이어폰 시장의 확대로 인한 점도 있어서 매출이 몇 배로 늘어나긴 했지만 뭔가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그래서 저와 사운드캣은 두 달간 집중적으로 구찌, 버버리 등의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들의 ‘턴어라운드’ 사례를 연구해 올해 9월경부터 새로운 전략을 적용하게 되었습니다. 

이 ‘턴어라운드’ 전략은 한국 음악업계의 변화와도 맥락이 이어지는데 각종 음악방송을 비롯한 크고 작은 콘서트에서 이제는 인이어의 사용이 중요한 요소로 바뀌어 가고 있고 이는 곧 대세로 이어질 것이라는 판단하에 그간 전략적으로 소외된 부분이었던 뮤지션 시장을 집중적으로 공략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국내 음악계의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세션 연주자들을 웨스톤 엔도서로 섭외하고 있으며 그들의 영향력을 통해 중학생부터 대학생까지 음악을 전공하고자 하는 젊은 세대에게 인이어의 필수성을 어필하고 웨스톤의 인지도를 올리기 위해 ‘Westone On Campus’, ‘Westone Awards’ 등의 이벤트를 통해 웨스톤과 인이어의 대중화를 지속적으로 확대할 계획입니다.

웨스톤 이외 개인적으로 추천하고 싶은 브랜드가 있으신지요? 

저는 브랜드의 감성적인 부분을 중요하게 여기는데요, 지난 수년간 제가 특히 관심을 가졌었던 브랜드들이 그러했습니다. 단순히 브랜드와 제품 그 자체가 그 브랜드의 전부가 아니라 브랜드가 주는 감수성, 그리고 감성적인 부분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런 저의 개인적인 평가 기준으로 보았을 때 모든 부분을 만족하게 하는 브랜드가 바로 ‘노드'(NORD)입니다. 이번에 저희 사운드캣에서 ‘캣츠 굿즈’를 오픈하면서 가장 어필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노드 굿즈’들이라고 생각해 오선지 악보와 우산, 에코백, 파우치, 필통, 머그컵 등의 굿즈를 제작하도록 한 이유가 바로 ‘노드’ 브랜드가 가지고 있는 감수성 때문입니다. 

그리고 노드 외에도 ‘Teenage Engineering’ 역시 다른 분위기의 감성을 주는 브랜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펜더'(FENDER)도 일맥상통하는 감성적인 브랜드이기도 합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이 브랜드의 제품들이 각기 최고의 퀄리티를 갖춘 제품이라는 것입니다. 즉 퀄리티가 받쳐주지 않는다면 브랜드가 그 위상을 제대로 갖출 수 없다는 반증이기도 하지요.

최근 와디즈 펀딩과 연계해 새로운 브랜드 EOZ Air를 론칭하셨습니다.

최근 들어 와디즈가 점차 펀드 제품들을 다양하게 확대하면서 TW(Truly Wireless) 제품들도 많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사실 이어폰이라는 아이템이 기술적으로 딱히 내세울 게 없는 상황에서 TW의 출현은 어쩌면 와디즈 같은 크라우드펀딩에 유일하게 적합한 제품이라고 할 수 있지요. 

게다가 EOZ air 역시 ‘킥스타터’와 ‘인디고고’ 펀딩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된 제품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와디즈에서의 펀딩을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이번 ‘BSK2018’ 행사에서 와디즈 담당자와 만나게 되면서 급속히 진행을 하게 된 케이스죠. 

EOZ air는 기존에 EOZ one이라는 스타일리시 블루투스 이어폰을 제작했던 EOZ audio에서 새롭게 출시한 TW 이어폰으로 가히 현존하는 세상에서 가장 스타일리시한 제품이라고 자신합니다. 물론 음질과 기능적인 면에서도 우수하기 때문에 이 제품이 출시될 날만을 거의 1년 넘게 기다려온 것 같습니다. 

이번에 EOZ air를 와디즈에서 펀딩을 하면서 ‘와디즈 캣’이라는 새로운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해 진행하고 있는데 내년 1월경에 추가로 진행할 아이템을 준비하고 있으며 2019년도에 추진할 다른 아이템 선정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본부장님과 사운드캣의 중장기적인 계획, 그리고 앞으로의 사운드캣이 궁금합니다.

지난 2010년 이래로 저의 사운드캣에서의 계획은 계속 바뀌어오고 있습니다. 저의 역할도 바뀌고 있고요. 예전에는 제가 직접 다 처리했던 영업, 홍보마케팅, 온·오프라인 유통, 전략기획, CS를 이제는 50여 명의 직원들이 각자 책임감을 갖고 담당하고 있습니다. 빠르게 변하는 시장과 유통방식, 전 세계 정치적인 요소까지 우리의 전략을 뒤흔드는 요소들이 매우 많아졌습니다. 

그에 따라서 정량적인 면에서는 모든 사운드캣 구성원들이 공감할 수 있고 성취할 수 있는 현실적이면서 도전적인 목표와 계획을 세우고, 정성적인 면에서는 회사의 발전과 개인의 발전이 동반 성장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회사를 꿈꾸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인으로서 본부장이라는 타이틀에 앞서 먼저 회사의 대표님과 전 직원들을 위해 일한다는 생각으로 진심과 애정을 가지고 일하는 마음을 잃지 않으려 노력 중입니다. 2019년 새해에는 보다 더 새로워지고 발전된 회사로 거듭나서 모든 구성원들이 신명 나게 일하는 회사, 출근하고 싶어 지는 회사로 나아가는데 이바지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사운드캣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께 신년 인사 부탁드립니다.

저는 20주년이 되는 5년 후에는 과연 사운드캣이라는 회사가 어떤 회사가 되어 있을까라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합니다. 한편으론 20년을 못 채우고 사라지게 되진 않을까라는 우려도 아주 가끔은 합니다. 한 업계에서 10년 이상을 유지한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운드캣이라는 회사가 수 십 년 이상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가운데 모든 임직원들과 고객들에게 만족을 주는 회사로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