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死者와의 인터뷰] Kurt Donald Cobain, Nirvana

1997년 겨울 적막한 새벽.

소년 띵구룽은 오늘도 자전거에 신문을 한가득 실은 채 골목을 달린다. 찬바람이 이따금 볼을 스치고, 제대로 작동되는 가로등도 흔치 않아 식별이 힘들지 않을까 싶지만, 띵구룽은 이미 석 달 이상 매일같이 달린 이 좁은 달동네의 골목길은 이제 눈감고도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오늘이 마지막…”

신문을 던지는 스냅이 오늘따라 유난히 활기차다. 사실 오늘은 록키드 띵구룽이 생애 첫 기타를 장만하는 날. 어린 시절 부모님이 “너에게는 앞으로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다”라 못을 박은 이후 처음으로 나만의 소유물을 갖는 날이기도 하다.

비록 10만 원짜리 중고 클래식 기타였지만 집에 가져갈 수 있는 기타가 생긴다는 것(당시 동아리에서는 록음악 연주를 금지하고 있었다)만으로도 나에게는 큰 의미가 되었다. ​선배들의 눈을 피해 슬쩍슬쩍 틈틈이 연습 중인 메탈리카의 레전드급 명곡 ‘Enter Sandman’의 기타 리프를 흥얼거리며 힘차게 커브를 도는 그 순간!!

띵구룽의 자전거는 겨울 새벽 차갑고 날카롭게 굳어버린 빙판길을 이겨내지 못하고 어두운 하늘 속으로 용솟음 치기 시작했다. 띵구룽은 순간 더 이상 자전거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기 전에 다시 차디찬 땅바닥에 곤두박이칠 쳐버렸다. ​

“이것이 마지막…”

띵구룽의 자전거가 새벽의 고요함을 뒤흔들어 놓았지만 그는 언제나 그랬듯이 또 혼자였다. 띵구룽이 혹여 감기에 걸리지 않을까 하는 애처로운 마음에 길가에 널브러진 신문지만이 바람에 날려 띵구룽을 감싸 안았다.

바닥에 누워 바라본 하늘은 아직 어둡기만 했다.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는 띵구룽의 깊은 한 숨 섞인 입김만이 띵구룽이 외칠 수 있는 유일한 SOS 였다. 그렇게 가쁜 숨을 몰아쉬던 띵구룽은 바닥의 냉기다 점점 따뜻하고 포근해지는 것을 느끼며 이내 정신을 잃고 말았다.

“이봐 정신 차려봐~~ 어이!!”

서서히 기능을 잃어가던 내 몸뚱이를 누군가 세차게 흔들어 대는 듯한 느낌이 전해진다. 다시는 쓸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내 두 귀 속으로 누군가의 목소리도 들렸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차가운 겨울 새벽바람이 다시 내 볼을 할퀴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나도 모르게 두 눈이 번쩍 떠졌다.

내 온몸의 뼈 마디마디가 부스러진 것 같이 손가락 하나 까딱 할 수는 없었지만 그 어떤 고통도 느낄 수는 없었다. ‘살려달라’ 소리를 쳐야 할 상황이라 직감했지만 왠지 마음 평온했다. 이런저런 감흥에 심취해 있던 나의 눈 앞에 누군가 긴 머리를 출렁이며 불쑥 얼굴을 들이댄다. 그 사람은 긴 곱실거리는 생머리를 가진 서양인이었다. 순간 난 내가 천국에 왔음을 직감했다.

“예수님 여긴 천국인가요?”

“뭐라는 거야! 이 정신 나간 녀석아.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나는 너를 구원할 수 있는 예수님은 아니야 “

“정신 차리고 두 눈 똑바로 뜨고 나를 봐, 나로 말할 거 같으면 이 시대 마지막 록스타이자 위대하신 얼터너티브의 황제인 커트 코베인 님이시다! 하하하!!”

당황스럽다. 통상 우리가 황제라 칭할 수 있는 록스타라면 ‘건즈 앤 로지스’나 ‘스키드 로우’ 형님들이 먼저 떠올랐던 나에게 얼굴을 들이밀고 자신이 록의 황제라니…

어찌 됐던 자신이 록의 황제라 직접 자기소개를 하는 너무나 당당한 그의 모습에 일단 당혹스러움은 잠시 감추고 일어나 앉아 그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기로 했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의 눈빛에서는 ‘넌 나를 알아봐야 해’라는 간절함이 느껴졌고 한참 동안 그를 쳐다봤지만 도대체 그가 누구인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그는 의아해하는 내 얼굴을 보고 눈치라도 챈 듯 한숨 섞인 한마디를 내던졌다.

“나 참… 너 같은 애송이들 때문에 내가 아직 맘 편히 저 세상으로 가지 못하고 이승을 떠도는 거란다. 누군가에게 내 전설적인 ‘록 스피릿’을 심어주지 않고는 도저히 눈을 못 감겠단 이 말이지” ​

난 그의 말을 듣고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다. 아직 내가 있는 곳이 이승이구나. 그럼 난 아직 살아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안도감이었다. 그는 웃으며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의 힘찬 손길에 의지해 차가운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나를 일으켜 세우고 근처 놀이터의 나무 벤치로 자리를 옮겼다.

한동안 차가운 바닥에 몸을 뉘이고 있어서 그런 탓인지 따뜻한 자판기 커피 한잔이 절실하게 느껴진 나에게 그는 커피보다 더 따뜻한 이야기를 전해주기 시작했다.

“바로 그거야. 감성이 예술로 승화되는 과정. NIRVANA!(열반)”

“띵구룽, 잘 들어봐. 대부분 기타를 처음 시작하는 애송이들은 한결 같이 속주(速)에만 관심이 있어. 애송이보다 조금 나은 녀석들은 그 속주를 다른 사람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연주를 하려는 욕심들 뿐이지. “

“하지만 기타는 속도를 측정하는 속도계가 아니야. 정화성을 체크하는 메트로놈도 아니고. 그 따위 기계에 의존할만한 그런 게 아니란 말이지.”

“기타는 말이야, 사람들이 니 마음을 읽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심리 번역기’ 같은 거야. 니가 제 아무리 입을 꾹 다물고 침묵을 지키는 선비 같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니 기타 연주를 들으면 청중들은 니 마음 깊은 곳까지 꿰뚫어 읽고 공감할 수 있게 된다”

아, 지루해지던 찰나 잠깐 딴생각이 들었다. 나는 한국 사람이고 이 사람은 미국 사람인데 이 사람 말이 왜 이렇게 잘 들리지? 이게 이 사람이 얘기하는 ‘심리 번역기’라는 것인가? 잠깐 딴청 피울 틈도 없이 또 거칠게 말을 이어간다.

“애송이라 길게 얘기해야 알아먹을 것 같은 분위기군. 기타로 사람들에게 니 진심을 표현한다는 마음으로 연주해. 그리고 그 연주에 집중하는 거지”

“조금 다른 얘기지만 축구를 예로 들어볼까? 축구 선수가 공을 드리블하며 골대를 향해 뛰어갈 때는 솔직히 진심 따위는 필요 없어. 간절한 소망은 있을 수 있겠지. 그 선수는 이 공을 저 골대 안에 집어넣기만 하면 돼. 사람들에게 감동과 환호를 안겨줄 수 있는 것은 그 골이 골대에 빨려 들어가는 순간일 뿐이지”

“하지만 음악은 어때? 음악은 딱히 골대가 없어. 공만 있지. 니가 멋지게 차려입고 무대에 서서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는 순간 볼은 니 앞에 떨어져 있을 거야. 니가 가만히 서서 그 공만 바라봐도 사람들은 환호하기 시작할걸. 그 사람들이 너에게 기대하는 건 빠르고 현란한 기술이 아니야. 그런 걸 보고 싶었으면 축구장에 갔겠지.”

그의 얘기를 듣다 보니 문득 내가 처음 기타라는 악기를 연주하던 그때가 떠올랐다. 나는 ‘로맨스’라는 곡 하나 겨우 연주하는 수준이었지만, 내 마음속에는 이 곡을 수천번이라도 연주하며 밤을 새울 자신이 있었다.

그만큼 난 기타에 흠뻑 빠져있었고, 내가 기타를 연주하는 그 시간만큼은 나를 지배하는 분노, 열등감, 공포, 불안, 외로움 등에서 완전히 해방될 수 있었다. 사실 이 문화의 트렌드라는 건 항상 돌고 돌기 마련이다. 1980년대 당시 대중들은 팝가수의 화려한 퍼포먼스가 넋을 잃게 만드는 엔터테인먼트적인 음악 스타일이 너무나 익숙해져 버린 상태였다.

분명 금방 지루함을 느꼈지만 라디오와 방송에서 이들의 노래만을 틀어주니 다른 선택권이 딱히 없었다. 마치 어딘가 가려워 미치겠는데 정확히 어딘지 찾지 못하는 상황이랄까. 사람들의 가려움이 극에 달한 바로 그 시점에 ‘커트 코베인’이 사람들 앞에 섰다.

그는 팝 음악은 물론이고 록 음악까지 기존의 것들을 하나하나 해체해 나가며 자신만의 스타일로 청중들의 감성을 사로잡았고 그는 최고의 록스타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혹자는 이를 두고 ‘얼터너티브. 장르를 뛰어넘은 시대를 이끌 무브먼트의 시작’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문득 그가 예전에 남겼던 말이 생각났다. ​그는 절대 타인에게 증명하기 위한 도구로 ‘음악’을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얘기한 적 있다. 잠시 생각을 정리하자니 그가 또 목소리를 높인다. “나? 나는 그저 두세 가지 코드로 사람들의 가슴에 불을 지피는 데 성공했어. 네 놈이 나중에 무대의 맛을 알게 될지 모르겠지만, 소위 떠들어대는 ‘팬서비스’? 이런 건 아예 니 사전에서 지워버려”

“멋지게 보이려고 의상을 차려입는다거나 짜인 액션을 한다거나 마음에도 없는 언행들. 이런 짓들로 관객을 기만하려 하지 말고 차라리 관중에게 미움받는 걸 택하고 대중들이 음악적 본질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해. 넌 오직 너 자신에게만 증명하면 돼.” ​​

사실 음악인은 음악으로 평가받으면 그만이다. 그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이상형이 누구인지, 중독자인지, 얼마나 인성이 좋은지 따위에 대중들은 관심을 버려야 한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원하는 건 예술인이 아닌 스타였다.

이 만들어진 스타들에게는 항상 이슈와 가십거리가 필요했다. 그들의 사소한 일상 하나하나가 소중한 것이 아니라 계속 관객들에게 얼굴을 미추고 이름이 오르락내리락해야 하니 아무 일이나 만들고 뉴스에서 떠들어댄다. 그럼 사람들은 또 그 뉴스에 열광한다.

갑자기 한국 연예인들의 공항 패션이라는 신개념 마케팅 소재가 떠올랐다. 패션? 커트코베인을 아래 위로 훑어봤다. 멋을 내지 않으려 애를 쓴 사람처럼 꾸밈없는 그의 모습이지만 그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커트코베인’만의 멋진 스타일이 빛나 보였다. ​​

“비단 만들어진 스타만 그런 건 아니야. 니가 일단 조금이라도 유명해지면 그놈들은 니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면서 기사거리를 찾으려고 안달이 날 거야. 니 사소한 사생활 한 컷이 그들에게는 엄청난 부를 가져다주거든 “

“사자가 먹고, 하이에나가 남기고 독수리가 모이고 파리가 꼬이는 상황이랄까. 먹이사슬의 최하위에서 최상위까지 경험해 보니 세상에 이보다 역겨운 게 있을까 싶더라고”

그의 말을 들어보니 이 세상이 왜 이렇게 변했는지 알 수 있었다. 예전에는 ‘스타’ 단 한 사람만이 세상에서 빛을 내던 시절이 있었다. 스타가 나이가 들면서 이슈나 가십거리가 떨어지자 그들의 아이들을 앞세워 다시 관중 앞에 서려한다. 이 아이들에게는 아무 선택권이 없다. 아이들은 무조건 스타와 함께 카메라 앞에 서서 사소한 일상 하나하나를 관중들에게 보여줘야 할 의무가 생긴다.

아이들에 이어 부모님, 친구는 물론 친척 심지어 매니저까지… 이제는 이 세상 사람 절반은 TV에 나오고 나머지 절반은 TV를 본다. 유명 연예인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진솔한 모습을 담아낸다는 위선 가득한 변명을 앞세워 가족 모두를 발가벗겨 카메라 앞에 세우고 웃음을 자아내는 시대인 것이다.

과거 단 0.1%만이 스타가 될 수 있는 시대를 돌이켜보면 ​‘펑크 록’이란 음악을 뮤지션들은 언제나 비주류로써 그 위치를 다져왔다. 이 비주류 뮤지션들은 조심스럽게 권력에 저항하고 소심하게 분노를 표출하며 소외된 자들에게 위로를 주었다.

커트 코베인 역시 ‘펑크 록’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고 그것이 세상에서 배운 유일한 처신의 방법론이었다. ​​

“우리 같은 부류에게 음악은 마지막 피난처야. 그런데 이곳에서마저 자신을 속인다면 극도의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어. 나란 존재를 설명할 수 없으니… 나 역시 갑작스레 찾아온 성공으로 어느새 주류의 선두주자가 되어버린 케이스지. 나의 성공을 시샘이나 한 듯 전 세계에 얼터너티브로 무장한 밴드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기도 했어 “

“이렇게 얼터너티브 음악이 대세를 이루던 시절, 사람들은 하나의 음악 장르를 개척했다며 찬사를 보내왔지만 나는 절대 행복하지 않았어. 행복은 고사하고 어마어마한 자괴감에 휩싸였었지” ​​

“내가 노래할 수 있는 원천은 세상에 대한 분노와 증오, 가난과 열등, 불평등과 소외감, 희망의 부재 이러한 것들이지. 하지만 그런 나마저도 가정이 생기고 돈도 갖게 되니 서서히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게 사라지는 거야. 무대에 서서 거짓으로 노래하는 것이 너무 창피했지”

그는 예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분열된 자신을 더 이상 스스로 지탱할 수 없어 헤로인에 의지하는 날이 늘어 갔다고 고백한 적 있다.

“나는 이제 뭘까?… 많이 고민해봤지. 그런데 답이 없더군. 예전의 내가 바라던 것은 이루지 못하고, 그 반대로 가지고 싶지 않았던 것들만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을 느끼고 일찌감치 접기로 했어. 서서히 사라지기보다는 한 번에 불타 없어지는 것이 나으니깐. 하하!!”

내가 처음 마주친 그의 눈빛과는 사뭇 다른 눈빛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분명히 웃고 있었지만 그는 분명히 울고 있었다. 잠시 드리웠던 슬픈 그림자를 힘차게 걷어내고 그는 무릎을 탁 치며 일어섰다.

“아, 이제 내 할 일을 다 했으니 슬슬 다른 데로 가봐야겠군. 어이, 애송이. 너는 좀 더 그럴듯한 록커가 되길 바란다.” ​

마지막 악수도 나눌 틈 없이 그는 홀연히 자취를 감춰버렸다. 꿈만 같았던 ‘커트코베인’과의 짧은 만남 덕분일까? 마침내 기타를 장만한 소년 띵구룽은 한동안 ‘Smells Like Teen Spirit’을 연주하는 재미에 푹 빠져 살았다. 아마 수천만 록키드들에게 가장 많이 연주된 곡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

자살이다 타살이다 이견이 분분하지만, 나는 그저 자본주의에 정면으로 맞선 비주류 대표의 비참한 최후일 뿐, 누가 방아쇠를 당겼는가에 대한 논쟁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최근 ‘커트 코베인’이 무대에서 부순 기타가 경매에서 고가로 팔렸다는 소식을 듣고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는 평생을 고통받고 죽어서도 고통받는구나. ​​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 매일 세상과 타협해온 띵구룽은 더 이상 커트 코베인의 음악에 가슴이 뛰지 않는다. 오랫동안 고수해온 잠옷 바지도 장롱 구석으로 숨은 지 오래다. ​다만, 아직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한 자신과 똑바로 마주할 날을 꿈꾸며 오늘도 정진해보려 한다.

<글: 소년 띵구룽>

Kurt Donald Cobain 과 소년 ‘띵구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