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INTERVIEW] 유지연, 싱어송라이터

유지연은 국내 최정상급 어쿠스틱 기타리스트, 편곡자, 프로듀서다. 1975년 언더그라운드 포크&팝 뮤직 기타리스트로 데뷔한 그는, 1978년 가수 정태춘, 박은옥의 음반 편곡과 기타, 하모니카 연주를 담당하면서 이후 수많은 포크·팝 계열 유명 가수들의 명반(신형원, 김범룡, 이선희, 임지훈, 윤형주, 김창완(산울림), 김종찬, 해바라기, 오선과 한음, 노고지리, 배따라기, 이재성 등 500여 앨범)의 편곡, 연주와 프로듀서를 맡아 왔다.

한동안 대한민국의 포크송에 그의 어쿠스틱 기타, 하모니카 연주가 들어가지 않은 앨범이 거의 없을 정도였으며, 그가 직접 쓰고 부른 곡 ‘사랑과 평화’는 지금까지도 대학가와 통기타 세대에 널리 불려지고 있는 명곡이다. 또 수많은 워십송과 100만장 이상 판매된 CCM 앨범들의 편곡, 연주와 함께 프로듀서를 맡아 그동안 ‘복음성가’(gospel)라는 이름으로 일관돼 오던 국내 크리스천 뮤직의 패턴과 흐름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1990년대 후반 그는 해외 CCM 라이선싱/배급을 위해 ‘휫셔뮤직그룹’(Fisher Music Group)이라는 뮤직 레이블을 설립하고 “힐송 뮤직, 킹스웨이(인테그리티), 빈야드, 지저스 컬처, 벧엘 뮤직, 디스커버리, EMI CMG, Word, IHOP” 등, 전 세계 워십 & CCM 메이저 레이블들의 음악을 국내에 소개하는, 수입, 제작, 유통 사업을 통해 한국 최고의 CCM 디스트리뷰터로 사업을 일으켜왔다.

오랜 공백을 깨고 새 앨범을 들고 다시 우리 곁에 돌아온 전설의 기타리스트 유지연을 만나 대한민국 포크&팝 뮤직 싱어송라이터, 뮤지션으로 살아온 인생 이야기와 우리 음악이 나아갈 길에 대한 그의 생각을 허심탄회하게 들어봤다.

[유지연]

여러분 안녕하세요? 한국의 어쿠스틱 기타리스트, 싱어송라이터 유지연입니다. 이렇게 저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신 레전드 매거진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만나 뵈어 반갑습니다.

저는 ‘휫셔뮤직그룹’이라는 CCM 라이선싱과 수입, 유통 사업을 25년 정도 이어가며 음악활동을 떠나 있었습니다. 최근 새 앨범을 발표하고 전국 투어를 하며 다시 뮤지션으로서 활동을 시작했는데, 주변의 많은 선후배 동료들의 너무나 따뜻한 응원과 격려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를 비롯해 많은 국내의 많은 포크 뮤지션들이나 밴드들이 다시 음반을 내고 활동을 재개하면서 포크 뮤직이 활기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한다고 되겠어?”라고 스스로 의문을 던지던 많은 아티스트들이 제가 다시 스테이지에 서는 모습을 보고 도전과 자극을 받았다고 말할 때 큰 보람을 느끼게 되며 그 도전이 저에게 다시 이어지게 됩니다..

저는 지나간 저의 삶의 이야기보다는 지금 대한민국 음악 산업의 현실, 그리고 우리가 추구하고 준비해야 할 현재와 미래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지금 뿐만은 아니지만 현제 한국의 문화예술분야는 혼란과 발전, 그 과도기 속에서 크고 작은 문제들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균형이 없는 일반적인 삶의 시각이 예술분야, 특히 음악시장에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듣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으로 심하게 기울어진 현상이 심각한 불균형을 이루고 있는 현실입니다.

[대한민국, 그리고 음악]

요즈음 화두가 되고 있는 문화 예술인의 드러난 이슈들은 어떠한 예술을 하고있는가 라는 문제보다는 그 예술인이 어떠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라는 성품이나 자세가 더 가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상입니다.

유명인이라는 삶 뒤에 가려진 그들의 은밀했던 사생활이 공개되면서 문화예술 전반에 허상이라는 큰 타격을 가져다 주게 된 것입니다.

사실 이런 현상은 이미 오래전부터 가시화될 충분한 요지가 있었지만 단지 기사화되고 드러나지 않았을 뿐입니다. 비단 한 두 사람 개인의 잘못으로 치부하기엔 그 상처와 고름이 너무 오랫동안 숨겨져 왔던 것이죠. 예술인은 어떤 형태의 예술을 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의 모습과 습관도 바뀌게 마련입니다.

이전의 음악들은 소위 아름다운 기타 선율과 가사, 메시지로 사람의 생각을 파고들고 영혼을 터치하는 노래들을 부르는 뮤지션들이 많았죠.

흔히 통기타 세대로 불리던 국내 포크 선두주자들입니다.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어도 그 아름답고 순수했던 감성들을 아직도 간직하고 살아가죠. 음악이 가지고있는 능력 때문인데요, 그래서 우리는 아직도 김민기의 ‘아침이슬’을 들을 때면 마음이 평온 해지고 위로가 되며 무엇인가를 추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반면 이 시대에 통용되고 있는 소위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음악은, 그 뮤지션의 삶의 철학이나 가치관보다는, 얼마나 화면을 장악하고 SNS를 잠식하는가에 따라 그 음악의 목적이 판가름 나는 겁니다. 쉬운 말로 히트만 치면 되죠.

그 뮤지션의 철학과 가치, 삶은 자세는 반영될 틈이 없어지는 겁니다. 실제로 모 유명 기획사의 경우 30여 명의 작곡가들에게 한 가지 주제를 던져주고 노래를 만들게 합니다.

그 30여 명이 만든 30여 개의 노래를 다시 모자이크나 퍼즐처럼 짜 맞춰 하나의 노래를 만들어 대중들에게 선보이는 경우도 있는데, 심한 경우는 외국 히트곡의 코드와 사운드를 그대로 가져와 녹음해 놓고 그 위에 멜로디만 만들어 얹어놓는 일도 있죠.

이렇게 만들어진 곡들이 이제 바닥이 드러나 그 수명을 다하게 된 것이 지금의 국내 음악 산업의 열매들이라고 봅니다. 디지털 음악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음악들이 주류를 이루면서 음악을 듣고 무언가를 생각하고 그 메시지에 변화되고 도전하고 힘을 얻는 기회를 잃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음악이든 사상과, 철학, 가치관은 음악의 생명과도 같습니다.

뭐 굳이 음악 한 곡을 듣는데 철학, 사상, 가치관까지 따져야 하냐며 반문할 수도 있겠죠. 前 하버드 대학의 존경받는 ‘나단 푸시’ 총장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이 시대에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했죠. “따를 수 있는 지도자, 흔들 수 있는 깃발, 그리고 들을 수 있는 노래.”

지금 우리도 따를 수 있는 지도자를 상실한 시대며, 누구든 승리의 깃발을 들고 앞장서서 외치는 자가 없죠. 하지만 저는 음악 얘기를 하려합니다.

노래, 즉 음악이라는 것은 어느 면에서 시대를 이끄는 지도자, 깃발과 같습니다. 지도자의 말에 우리는 귀를 기울이고 높이 들린 깃발은 우리가 갈 길의 상징이죠. 시대를 대변할 수 있는 그 역할이 음악 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문화는 시대의 대변이며, 음악이 가지고 있는 영향력을 통해 세상에 위로와 용기, 사랑과 평화를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가사 한 구절 한 구절에 마치 시인처럼 삶을 담아낸 노래들이 실제로 시간을 넘어 사람들 마음과 영혼의 깊은 곳에 자리하게 됩니다.

음악과 노래에 반드시 철학이 있어야 음악이라고 말 할 수는 없지만, 어떤 음악이든 그러한 것들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어야 합니다.

이 모든 이론들은 단순히 ‘세월의 변화’ 때문에 벌어진 틈새는 아닙니다.

가사를 읽어가며 음악을 들어도 무슨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것인지 알 길 없는 요즘 노래와는 사뭇 다른 그 무엇인가를 분명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세월의 변화’ 때문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

이전의 음악과 지금의 차이는 어떠한가요? 예전에는 너무 먹고 살기 힘들고 민주화를 갈망하던 시절이라 사람들이 음악으로 호소를 할 수밖에 없었을까요?

반대로 지금은 선진국 반열에 다가선 한국의 삶이 다 행복하기에 더 이상 음악에 메시지를 담아 전할 필요가 없어졌을 까요?

그 당시를 거쳐 지금을 사는 저의 대답은 ‘NO’입니다. 우리는 어쩌면 예전보다 더 척박하고 사랑 없는 세상을 살아가는지도 모릅니다. 지금도 여전히 우리에겐 음악을 통한 위로와 용기, 사랑과 평화가 필요합니다.

[유지연, 그리고 열정]

음악을 하려면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단순히 음악에 대한 뜨거운 마음이 아니라 나의 음악으로 어떤 얘기를 할 것인지, 우물 속에서 물을 길어 올리는 것 같은, 솟아나는 열정을 가져야 합니다.

‘The Passion of Christ’라는 영화의 제목은 ‘그리스도의 수난’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Passion’은 ‘열정’이 아닌 ‘수난’으로 해석되는데, 열정은 고난 속에서 피어난 것이어야 합니다. 마치 No pain, No gain 처럼, 고난의 속성이 빠진 열정은 무의미하다는 말입니다.

그 다음 열정을 가졌다면 열정을 불태우기 위해 ‘집중’해야 합니다. 열정을 분산시키는 것이 아니라 목표에 집중하는 거죠. 그리고 흐트러지지 않고 계속 집중하기 위해선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무엇엔가 ‘미쳤다’라고 표현하는데, 바로 이 세 가지가 필수입니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아티스트, 뮤지션은 열정, 집중, 에너지- 이 세 가지는 어느 것이 먼저랄 거 없이 서로 순환하며 하나가 다른 하나에게 영향을 주며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굴러갑니다.

우리 몸과 영혼은 이 에너지가 흐르는 통로 역할을 하죠. 열정과 집중을 만들어가는 에너지를 받아, 그 에너지를 다른 곳으로 전파하는 매개체가 예술이죠.

저도 이렇게 에너지를 만들어 그 에너지를 음악을 통해 쏟아내고 있습니다. 청중도 우리에게 또 다른 에너지를 전해주죠. 서로에게 흘러가는 겁니다.

저의 이런 시도들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들과 함께 좋은 에너지를 교류하고자 친구들과의 합동 공연도 기획 중입니다.

저의 노래들을 젊은 뮤지션들이 연주하고 그들은 제가 시간적으로 생성할 수 없는 그들만의 에너지를 전해줍니다. 불어넣어주는 것이죠. 산울림 김창완의 노래를 아이유가 부른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 시대를 사는 법]

사람들은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를 좋아하고 그들처럼 탑이 되고자 하면서 그들의 말에는 크게 귀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저 부자가 되고 싶고 스타가 되고 싶어 하지, 그들이 어떤 노력의 결실로, 어떠한 철학과 가치관을 가지고 그 자리에 오르게 됐는지 그 과정은 쉽게 무시합니다.

스티브 잡스는 ‘Stay Hungry, Stay Foolish’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이 말은 단순히 배고프고 어리석어 라는 말이 아니잖습니까! 하지만 많이 배부르면 많은 것을 보지못하고 놓치게 됩니다.

항상 갈급한 마음을 가지고 추구하는 것을 향해 다가가는 삶, 스스로 부족하다고 여기며 똑똑한 자의 자리보다는 어리석은 자의 자리에 머물며 세상을 볼 수 있는 지혜, 다 알아보다 아직도 배워랴할게 많다고 말하는 어리석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흔히 말하는 것처럼 ‘바보에게는 매일매일이 축제’가 열립니다. 그처럼 갈급하고 부족하고 낮은 자에게는 너무나도 많은 기회가 보입니다.

‘아는 만큼 보이고, 가진 만큼 이해됩니다’ 보지 않아도 눈에 보이고, 가지려 하지 않아도 손에 들어옵니다. 겸손한 바보들은 그 방법을 잘 알고 있습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겸허한 마음으로 상대를 배려하는 자들이 보고 알고 느낄 수 있습니다.

또 우리는 ‘배려’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배려는 ‘존중’입니다. 이것은 받아본 사람이 베풀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사랑’입니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무엇을 받기 전에는 절대 내가 먼저 배려하지 않습니다. 내가 배려를 해야 할 상황이나 때를 의식하다 보니 부자연스럽고 진심이 전해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 ‘배려 철학’은 몸안에 습관 되어 있어야만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합니다. 스티브 잡스는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Stay Hungry, Stay Foolish’라는 말을 깨닫고 모든 예술가를 포함, 우리 모두에게 큰 선물을 안겨주고 갔습니다.

[마지막 메시지]

사실 스티브 잡스는 ‘아날로그’를 없애려고 ‘디지털’을 사용했던 것이 아닙니다.

‘디지털’을 통해 ‘아날로그’에 접근하여 그것을 좀 더 쉽게 전달하고 싶은 마음이었죠. 그토록 사랑하는 ‘비틀즈’의 노래들을 길을 걸으며 듣고 싶었던 순수한 아이디어가 ‘아이폰’을 탄생시켰습니다.

꽃에 비유한다면 ‘아날로그’는 ‘생화’며, ‘디지털’은 ‘조화’라고 할 수 있죠. 우리는 지금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생화’같은 ‘조화’를 만들려고 고민하고 있습니다. 산과 들판에 아직도 수많은 생화들이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데 말이죠. 우리 인간도 생화처럼 아날로그며, 우리가 형성하는 인간관계 역시 아날로그 입니다.

이 아날로그 감성을 조금 더 쉽고 빠르게 전하려는 전파의 도구가 ‘디지털’입니다. 하지만 ‘조화’는 절대 향기를 낼 수 없습니다. 조화에 물을 준다 해도 절대 생명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 꽃을 보고 싶은 마음을 조화로 위로할 수는 있어도 절대 생화가 하는 일들을 해낼 수는 없습니다. 아날로그 향기 때문이죠.

음악은 이 세상에 ‘생화’와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향기가 있어야 하고 생명력이 있어야 하죠. 저는 그런 음악을 하고 싶습니다. 철학과 가치관, 사랑과 평화의 향기를 품은 음악.

저의 이 비전을 이루도록 열정을 불태우며 음악을 통해 에너지를 흘려 보내는 음악들을 만들어가겠습니다. 음악 하는 사람들 많이 격려해주시고 찾아가 주시고 음반도 구입해서 들어주시고, 예술이 향기를 낼 수 있도록 그 자리를 지켜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