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死者와의 인터뷰]사운드캣 캐릭막냥, 후지코 후지오(藤子不二雄)

[후지코 후지오(藤子不二雄)]

후지코 후지오(藤子不二雄)는 일본의 만화가로 ‘후지모토 히로시’와 ‘아비코 모토오’ 두 작가가 콤비를 이뤄 탄생한 공동 필명이다. 1951년 콤비가 결성되어 1954년부터 ‘후지코 후지오’라는 필명을 사용했고 콤비가 헤체된 1987년까지 이 필명으로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후지코 후지오를 전 세계에 알리게 된 작품이 바로 ‘도라에몽’(ドラえもん)이다.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지도, 또 그렇다고 컴퓨터를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 했던 나의 어린시절,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집에 들어오면 TV속에서 항상 만날 수 잇었던 애니메이션 캐릭터다.

도라에몽은 신기한 도구와 언어. 그리고 도라에몽의 친구 ‘노진구’의 의 성장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감성적 스토리는 나의 동심을 지켜주었고, 나의 어린시절 내내 나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즐거움이 되어주었다.

나의 어린시절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었던 ‘도라에몽’과 ‘진구’를 탄생시킨 역사를 되짚어보고자 찾아간 ‘도라에몽 박물관’에서 나는 ‘후지코 F 후지오’가 나란히 앉아있는 모습이 담긴 옛 사진 앞에 우두커니 섰다. 나의 어린 시절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준 ‘도라에몽’을 탄생시킨 사람들과 마주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전율이었다.

나는 그 기분좋은 짜릿한 전율을 마음껏 즐겼다. 눈을 감고 박물관 구석구석 스며들어있는 도라에몽과 진구, 또 후지코 후지오의 내음을 한 가득 담기 위해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나는 마음속으로 그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선생님, 이렇게 뵙게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그 순간 마치 ‘도라에몽’ 만화의 한 장면처럼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사진 속 그들이 내 마음속 인사말에 답을 해 왔다.

‘김지혜님. 안녕하세요. 저도 이렇게 만나게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그들의 회답에 놀라 눈을 뜨고 그 사진을 바라보니 사진은 그대로였다. 하지만 그들은 내 마음속의 말에 귀기울이기 시작했고, 나 역시 그들이 나에게 전하는 목소리를 마음으로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너무 궁금했떤 일들을 하나하나 물어보고자 그들에게 조심스럽게 다시 말을 건넸다.

‘선생님은 어떻게 만화를 그리기 시작하셨나요?’

A : 저는 한 마디로 말하면 눈에 띄지 않는 아이였어요 이렇다 할 특징도 없는 그런 아이였죠. 외동으로 어리광 부리며 자란 탓도 있으려나요. (웃음) 내성적이고 사람들 앞에서는 큰 소리 한번 못냈던, 구석에서 혼자 공상에 빠지거나 조용히 책을 읽는 걸 좋아했어요. 제 마음이나 감정을 남에게 표현해내는데 서툴렀던 아이였어요.

그런 저에게 그림은 저의 감정과 마음을 표현하는 단 하나의 수단이었던 것 같아요, 뭔가 제 안의 이야기, 또는 사람들만의 세계같은 다양한 우리 일상 이야기를 종이에 그리는 그림 연극 같은 형태를 만들었어요.

그림은 유치원때 부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저희 가족 모두 ‘오 잘해 잘해’ 라고 칭찬 해 주셨고 그렇게 그림은 저의 특기가 되어 버렸어요. 가끔 그림에 너무 열중해 버리면 역시 그리는게 도가 지나치게 되어 ‘토바에’(일상생활을 그린 만화풍) 정도에 그치는 경우도 있었죠.

Q : 그렇군요. 역시 칭찬이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나 봅니다. 그러고보니 선생님은 만화가 ‘테츠카 오사무’(手塚 治)를 존경한다고 하셨는데요. 테즈카 오사무와 관련되어있는 일화가 있나요?

A : 초등학교 때 저는 저의 지금까지의 절친 ‘후지코 후지오A’를 만났습니다. 저와 후지코 후지오A는 매일같이 서점을 찾아 출간된지 얼마 안됐던 테즈카 오사무의 만화 초판을 모두 사서 모을 정도로 열광적인 팬이었습니다.

그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우선 취직하기로 마음먹었던 저는 제과 회사에 취직을 했지만, 혹시 모를 불의의 사고로 앞으로 더 이상 만화를 그릴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생겼고 저는 그 회사를 그만두었어요.

정말 우연히 테즈카 오사무씨를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이 무렵 저 자신이 과연 만화가로서 잘 해나갈수 있을지 불안했었는데, 테즈카 오사무씨가 ‘너희라면 해나갈 것이다’라 말씀해주셨고, 저희는 그 말을 듣고 만화가의 꿈을 버리지 않기로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그 뒤 우리는 만화가로 정식 데뷔했는데, 초기 저희 작품은 테즈카 오사무씨의 그림체와 판박이였을만큼 그 분의 스타일을 흉내내며 그림을 그렷어요. 또 데뷔 초기 필명도 테즈카 오사무에서 따온 ‘아시즈카 후지오’라는 필명을 사용했었을 정도로 테즈카씨의 작품에 특별한 애착을 가지며 활동했죠. 언젠가 테즈카 선생님같은 멋진 작품을 만들어내니라 마음 먹었기 때문에 그랬던게 아닌가 싶어요.

Q : 정말 존경심이 대단했었네요, 선생님은 데뷔 후 슬럼프가 있던 시절이 있었다고 들었는데요. 그때 어땠는지, 또 무슨일이 있었는지 궁금해요.

A : ‘스튜디오 제로’를 설립한 후 만화를 잡지에 연재하기 시작했고, 저의 절친 후지코 후지오A와 공동으로 그린 ‘요괴 Q타로’, 저의 단독 만화인 ‘퍼맨’은 상당한 성공을 이루었지만 그 뒤로 연재한 ‘21에몬’, ‘우메보시 덴카’, ‘우주에서 온 모자코’ 등은 오래가지 않아 연재가 종료되었어요. 그렇게 저는 몇년간 슬럼프에 빠졌었습니다.

그러다 ‘쇼가쿠칸’ 학습 잡지에 신작을 연재할 기회가 생겼고, 저는 저 자신을 모티브로한 캐릭터에 대해 만화를 그릴려고 한것이 바로 ‘도라에몽’이었습니다.

1969년 쇼가쿠칸 잡지에 도라에몽을 연재하기 시작했지만 당시에는 인기가 좋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4년 뒤인 1973년에 애니메이션이 종영하면서 편집부에서도 연재를 종료시키려 했을 정도였죠. 하지만 저는 이에 반발을 했고 ‘미키오와 미키오’를 새로 연재하면서 도라에몽의 연재를 이어갔습니다.

그 결과 도라에몽은 6년이 지난 1979년 TV 아사히에서 재 애니메이션화되면서 엄청난 인기를 얻었고, 이후 후지코 후지오 A의 작품들 또한 애니메이션화되어 보다 많은 인지도를 쌓는 계기가 되었죠.

Q : 포기하지 않은 그 열정이 지금의 도라에몽이 탄생할 수 있었던 이유였군요. 선생님의 말을 듣고 몇가지 궁금한점이 생겼습니다. 진구가 선생님의 모티브라면, 진구 옆에 항상 있는 도라에몽은 어떻게해서 탄생하게 되었나요?

A : 처음 쇼가쿠칸 잡지에 신작을 연재할 기회가 생겨 만화를 그릴려고 했을때 문제가 있었습니다. 노비타(진구)를 도와줄 친구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리지 못해 정말 곤란했었죠, 왜냐하면 잡지엔 책상서랍에서 “나왔다!” 라는 글자만 있는 광고를 이미 내보낸 상태라서 무를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죠.

그런 고민을 하던 중 밖에서 고양이가 시끄럽게 울어댔고 그때 우연히 눈에 들어온 ‘오뚝이 인형’을 보며 강렬한 영감을 얻었습니다.

Q : 정말 재미있네요, 고양이와 오뚝이를 보고 도라에몽을 생각하실 수 있던 선생님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은 노비타(진구)가 자신의 모티브라고 하셨죠? 그럼 노비타(진구)에 대한 각별한 생각이 있을 것 같은데, 노비타(진구)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가요?

A : 노비타(진구)는 무척 훌륭한 부분이 하나 있어요. 그건 자신도 눈치채지 못 해요. 그게 어떤 점이냐면, 그는 정말 한심하지만 때때로 반성을 한다는겁니다. 이래선 안된다고 그래도 조금은 지금보다 훌륭한 사람이 되고싶다고 생각하지만 그 결심이 오래 가지는 않아요. (웃음) 겨우 몇 분 지나면 반성하는 것을 잊어버리거나 아니면 그 마음이 사흘을 못넘기죠.

하지만 말이죠, 그건 누구라도 그럽니다. 그렇게 점점 모두 평범한 어른이 되지만 노비타(진구)는 그런 점이 달라요. 1년에 적어도 3~4번은 반성을 해요. 꺾이고 꺾여도 자신은 지금보다 좋은 사람이 되고싶다고 생각하고 결심을 하죠.

그런 점에서 저는 노비타(진구)가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어른들 조차 자신의 모습에 반성하는 것을 ‘굴복’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이 세상을 생각해보면 진구가 란믄 반성이 얼마나 힘든것인지 아실거예요

Q : 선생님이 노비타(진구)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잘 알 것 같습니다. 노비타(진구)를 정말 특별하게 생각시네요. 그럼, 만화를 그리면서 무언가 고민을 하시거나 그런적 있으신가요?

A : 매 회 고민하고 있어요. 아 뭐 도구는 여러가지 낼 수 있어요. 그 도구를 써서 재미있게 이야기를 쓰려고 한정된 등장인물로 한정된 페이지 안에 그리려면 비슷한 이야기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가능하면 그걸 피해서 새로운 이야기를 그리는 게 제일 힘들었던 것 같네요.

Q : 비슷한 이야기를 최대한 피하는 것이 모든 작가분들의 숙제같네요. 선생님은 취미가 다양하다고 알고있는데요, 취미가 작품에 영향이 갔었나요?

A :저는 철도 모형을 즐기던 취미가 있고, SL 등을 소재로 한 작품도 다수 그려내기도 했습니다. 제가 직접 카메라를 촬영해보거나 디오라마를 만들어보기도 했었으며, 특수 촬영, 프라모델, 무선 조종 등 많은 것을 탐구했죠. 또 공룡에도 관심이 깊어 책상에는 시조새의 복제 화석 및 티라노사우르스의 프라모델과 진짜 드폴로도쿠스의 꼬리뼈까지 장식되어있습니다. 그리고 그 취미를 통해 도라에몽 속 ‘비밀 도구’의 아이디어를 짜내기도 했습니다.

Q : 좋아하는 것과 일을 동시에 하다니 정말 꿈같은 일을 실제로 하고 계셨네요. 선생님은 아이들이 말한 순진한 질문들을 최대한 동심 파괴하지 않도록 답을 한다고 들었는데요. 그 질문과 대답이 무엇이었는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A : 제가 딸을 데리고 다녔을때 딸이 저에게 말했죠 “도라에몽은 어디에 있어?” 라고 말이죠 그래서 저는 바로 딸에게 “도라에몽은 지금 방속국에 있어” 라고 답을 했습니다. (웃음) 그리고 예전에 베트남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때 아이들이 저에게 “4차원 주머니를 가지고 있나요?” 라고 물어봐서 저는 “도라에몽이 착용하고 있지만 그 외에 예비 주머니가 있는데, 그것은 2개 밖에 없기 때문에 나한테는 없단다” 라고 답했죠.

Q : 아이들의 동심을 지켜주는 대답. 정말 멋지네요. 마지막으로 저와 같은 청년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A : 저는 도라에몽 애니에서 나온 대사중 몇가지를 말해주고 싶네요. “아무리 공부를 못한다 하더라도, 아무리 힘이 약하다 하더라도 어딘가에 너의 보석이 있을 거야. 그 보석을 다듬고 다듬어서 반짝반짝하게 빛내봐.”

“지나간 일에 후회해도, 소용 없잖아. 눈이 어째서 앞에 달려 있다고 생각해? 긍정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야.”

“미래는 순간순간 달라지니까 먼저 고민하는 것보다 지금을 열심히 살면 분명 졸은 일이 있을거야.”

“너에겐 별처럼 많은 가능성이 있었고, 네가 그걸 잡은 것 뿐이야”

Q: 좋은 말을 해주셔서, 그리고 오늘 이렇게 시간을 내어 인터뷰를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 역시 그런 마음을 간직하도록 노력하고 또 대부분의 어른들과는 다른 마음가짐을 가지고 살아갈께요. 감사합니다.

그들이 전해준 도라에몽의 대사 한구절 한구절 되새기며 잠시 생각에 잠겼던 나는 문득 더 이상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고, 다시 고개를 들어 그들의 사진을 들여다 봣다. 내가 처음 볼 때 모습 그대로 그들은 사진속에 있었지만 그들은 나에게 계속 말을 걸어오는 것만 같았다.

보통 ‘어른’이라 불리는 집단은 그 집단에 소속된 누군가가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면 ‘철이 안들었다’라고 비아양 거리곤 한다. 무엇을 하던지 돈을 벌수 있어야 하고, 돈과 결부된 일이 어른들이 말하는 ‘멋진 일’이고 또 ‘대단한 일’이다. 어른들 세상에서는 ‘돈’이 ‘꿈’이자 ‘희망’이며 삶의 ‘목표’다.

하지만 그들 역시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을 간직했던 어린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애써 그 어린 시절의 마음을 지우려 발버둥친다. ‘아이’의 마음을 갖고 있는한 그들이 원하는 ‘돈’은 멀어진다는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오늘 하루만큼은 어른이라는 거추장한 양복은 벗어던져버리고, 어린시절 우리를 즐겁게해주고 행복하게 해줬던 만화영화 한 편 보면서 억눌려있는 ‘동심’을 만끽해보는건 어떨까?

<글: 사운드캣 캐릭막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