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운드캣 인터뷰] 장호준, 음향 엔지니어 - 사운드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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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드캣 인터뷰] 장호준, 음향 엔지니어

[음향시스템 핸드북]

‘음향시스템 핸드북’은 1993년 초판 발행 후 지금까지 약 11만 권이라는 전문 서적으로서는 경이로운 판매고를 올린 음향산업 입문의 교과서이자 베스트셀러다. 현재까지도 한글로 출판된 음향 관련 서적 중 최고의 책으로 평가받으며 초보자부터 전문가까지 음향 산업 종사자 모두에게 꼭 필요한 필수 서적으로 자리 잡았다.

다른 비슷한 종류의 책들이 기술에 대한 이론적인 설명 위주의 딱딱함과 종합 번역서 같은 저술 형태라면, 음향시스템 핸드북은 저자 자신의 완벽한 이해와 오랜 시간 실전을 바탕으로  정리된 기술이 저술된 것이 특징이다. 특히 온라인으로 잡식성에 가깝게 잡다하고 잘못된 지식을 습득해야 만 했던 음향 입문자, 그리고 실무 경험으로만 일을 배워 왔던 실무자 모두에게 반드시 필요한 지식을 제공한다.

글로 표현되는 이론 외에도 실제 음향 기술을 체험하고 따라 하면서 필수적인 기술을 이해할 수 있게 제작됐다. 또 QR코드로 동영상 강좌 링크, 실제 믹싱 음원, 그리고 필자가 검증한 다양한 사이트의 링크도 포함해 독자의 이해도를 향상시켰다.

음향시스템 핸드북의 저자 장호준은 1966년 서울에서 태어나 국립 구미전자공고 정보기술과, 광운대 전산학과, 그리고 1991년에는 미국 오하이오주의 ‘The Recording Workshop’을 수료하며 본격적인 음향 엔지니어 활동을 시작했다.  광운대 재학 시절에는 광운대 교내뿐 아니라 당시 대한민국 대학생 밴드를 대표했던 ‘페가수스’ 6기로 활동하며 음악과 음향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쌓기도 했다.

미국에서 단기간 레코딩 과정을 공부하고 돌아온 그는 ‘현대 기독교 음악’(CCM)의 레코딩과 콘서트 엔지니어 일을 하며 본인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1993년 ‘음향시스템 핸드북’ 초판을 출간하며 음향산업 업계에 그의 이름을 알리게 된다. 1995년에는 첫 개인 프로젝트 앨범인 ‘삶 psalm’을 발매했으며, 2000년 미국으로 건너가 지금까지도 미국에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대한민국 음향산업의 발달을 주도한 인물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음향시스템 핸드북’의 저자 장호준과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음향’과 함께 해온 그의 삶과 음악 이야기를 진솔하게 들어봤다.

[장호준, 음향 엔지니어]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음향 엔지니어 일을 하고 있는 장호준이라고 합니다. 1993년 발간되어 많은 분들이 출발점으로 삼아주셔서 너무나도 감사한 ‘음향시스템 핸드북’의 저자라 소개하면 조금 쉽게 다다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웃음)

제가 미국에 거주하는 관계로 직접 뵙지 못하고 서면 인터뷰를 통해 저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게 되어 송구스러운 마음이며, 이렇게 저의 소개를 할 수 있도록 저를 찾아주신 Legend 매거진과 사운드캣에 깊이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 장호준이라는 이름이 조금씩 알려지게 된 계기를 마련해준 ‘음향시스템 핸드북’을 집필한 지 벌써 25년이 되었네요. 그동안 4차례의 업데이트를 거쳐 현재는 ‘버전 4’가 출판되고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대략 11만 권 가깝게 판매되었다고 알고 있는데 한국 음향인의 숫자로 봤을 때는 꽤 많은 판매량을 기록한 책입니다.

이후로 제가 출간하는 책들은 모두 ‘핸드북’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됩니다. ‘마이크로폰 핸드북’, 교회 미디어를 위한 ‘테크니컬 미니스트리 핸드북’, 그리고 가장 최근인 2017년 발간된 ‘오디오 믹싱 핸드북’ 등이 ‘핸드북’의 이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사실 앞서 나온 3가지 책은 많은 레퍼런스 서적과 자료를 망라해 저 자신도 최대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을 목적으로 썼던 책입니다. 대부분 입문서들이 비슷한 내용을 가지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저 나름대로 열심히 제가 소화한 언어로 가장 쉽게 표현하려 노력했습니다. 이렇게 초급자부터 전문가까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내용을 담았다는 것이 ‘핸드북’ 시리즈가 사랑받는 가장 큰 이유라 생각합니다.

이에 반해 최근 출간된 ‘오디오 믹싱 핸드북’의 대부분은 제가 직접 연구한 내용을 기초로 구성된 서적입니다. 물론 앞서 걸어가신 분들의 연구와 노력의 결과가 큰 도움이 되었지만, 상당한 이론적 정리나 기술적인 활용 방법을 제 연구결과와 함께 모아 재정립해 만들었습니다.

통상적으로 믹싱의 팁이나 경험담을 담은 책은 많지만 믹싱 기술 자체의 이론과 방법에 대한 교과서적인 정리를 담은 책은 ‘오디오 믹싱 핸드북’이 처음이라 생각합니다. 다른 나라의 서적을 찾아봐도 그렇고요. 그것은 믹싱의 경우 경험을 토대로 지식이 공유되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믹싱과 관련한 이론이 적립될 기회가 그동안 별로 없었습니다. 뭐, 그렇다고 이 현재 상황에서 만들어진 제 이론이 완벽하다는 말씀은 절대 아닙니다.

저는 제가 믹싱을 하던 작업 스타일을 토대로 그것의 배경적인 이론을 정리하였고, 이 책이 현역 감독님과 음향산업을 공부하는 학생들의 궁금증을 풀어주고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준비한 책입니다.  그동안 업계의 정석은, 30년 걸린 마스터가 있다면 그다음 세대도 30년 이상이 걸려야만 합니다.

그것은 그 과정의 이론화가 없이 경험과 경력에 근거해서 만 수련의 과정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론이 있고, 그 과정을 그 이론에 의해서 실제적 기술로 만든다면 수련의 과정이 당연히 훨씬 줄어들게 됩니다. 모든 학문이 그런 과정을 밟아갔고, 또 그런 과정이 있습니다.

그러한 시도를 제가 한 가장 큰 이유는, 음향을 공부할 때 이런 책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1986년 음향 관련 일을 시작했습니다. 물론 시작을 하고 나서 초보 수준을 넘어서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환경이었습니다.

1986년도 광운대 재학 시절 ‘대학 연합 응원제’에서

당시 장비의 수준 자체도 아주 단순한 프리, 채널 EQ와 AUX, 그리고 믹서와 앰프를 연결하고 스피커로 소리를 내는 정도였으니까요. 사실 저는 고등학교에서 이미 대학의 전산과정을 2-3학년 과정 정도는 다 배우고 대학에 들어가서 전공보다는 학교 내 그룹사운드 ‘페가수스’에서 음향 엔지니어로 활동을 하며 이 일이 직업으로 되어 버렸습니다.(웃음)

당시 광운대 재학 시절 교내 그룹사운드 ‘페가수스’ 6기 사운드 엔지니어를 담당했었습니다. 그리고 그즈음 시작된 복음성가라고도 불렸던 CCM 쪽의 활동을 시작하면서 음향 엔지니어로 걸어가게 되었습니다.

정작 음향이라는 분야를 깊이 있게 공부하고 싶었지만 당시 한국에서는 제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서적이 없었습니다. 초보자가 도저히 알아볼 수 없는 두꺼운 전문가용 책, 그리고 일본에서 발행한 시공 매뉴얼과 같은 책, 이렇게 달랑 두 권만 서점에서 구할 수 있던 시절입니다.

더불어 ‘음향을 한다’라는 자체가 녹음실의 레코딩 기사님 또는 방송국 기술직 정도였습니다. 당시 서울에 약 2~30여 개의 레코딩 스튜디오가 있었으니 서울 시내에 전문 음향 엔지니어가 100분이 안 되는 상황이었죠. 그러던 중 1990년도 경에 음향과 관련된 원서 한 권을 선물로 받아 음향에 눈이 조금 열리게 됩니다.

그 책이 바로 YAMAHA에서 발행한 ‘Sound Reinforcement Handbook’이었습니다. 이 책 덕분에 ‘음향’이라는 부분의 전체적이고 상세한 지식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을 공부하던 비슷한 시기에 정말 너무나 고마운 지인의 도움으로 미국 오하이오주의 ‘The Recording Workshop’으로 2개월 과정을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게 됩니다.

원래는 정규 4년제 과정에서 배울 수 있는 내용을 단기간에 교육하는 아주 타이트하면서 집중적인 과정이었습니다. 아직까지 이 교육과정이 운영되고 있으니 관심 있는 분들께 적극 추천합니다. 대학의 낭만이나 학위는 없지만 본인이 원하는 기술을 단기간에 배우기 원한다면 최고의 과정입니다. 물론 어학이 현지인 수준이 되어야 하는 제약은 있습니다.

그전까지 수많은 작은 공연들부터 24살 어린 나이에 ‘숭의음악당’ 같은 대형 공연장에서 겁 없이 일해왔던 모든 경험들이 미국에서 공부하며 제 스스로의 음향 이론과 기술을 정리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The Recording Workshop에 함께 참여했던 90여 명의 학생 중 상위 10%에게만 주어지는 추천서까지 받을 수 있게 정말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한국에 귀국해 돌아보니 제가 생각했던 희망찬 미래가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당시 한국의 녹음실은 거의 100% 공고 졸업생, 또는 지인소개로 취업하는 도제식으로 어릴 때부터 배우고 수련하며 현역으로 활동하는 ‘기사님’들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이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돈이 많아 자기가 녹음실 차리지 않는 이상은 도저히 일을 구할 방법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저는 다시 예전에 해오던 라이브 공연 중심으로 일을 했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당시 한국 OST의 대표인물이었던 최경식 선생님의 목동에 있던 뮤직라인 스튜디오를 프리랜서로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게 1991년도였고 그 후로 10여 년간을 이런 식으로 여러 녹음실에서 프리랜서로 활동했습니다.

이 시절 활동하며 작업했던 작품들 중에 녹음과 믹스를 담당했던 ‘질투’(유승범)가 일반인에게는 가장 많이 알려진 곡인 것 같습니다. 1999년도 말까지 주로 CCM(현대 기독교 음악)의 레코딩·믹싱과 공연 음향 엔지니어로 일을 했습니다. 틈틈이 개인 음반을 포함해 여러 음반의 프로듀서, 작·편곡 작업도 이어갔습니다.

제가 다양한 음향 작업을 했지만 그 모든 활동의 기반은 CCM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교회와 함께 성장한 환경이 당연히 제가 CCM을 기반으로 활동을 하는데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단 한 번도 악기 개인 레슨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그냥 스스로 피아노, 드럼, 베이스, 기타 등을 익혔고 상당한 연주 실력은 아니지만 공연은 가능한 수준까지 됐었죠. 그중에 기타와 건반은 제가 필요한 만큼은 연주가 가능한 수준에 올랐고 이런 경험들이 ‘시퀀싱’이라는 작업을 수행하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도 살다 보면 우연이나 필연이나 뭔가 배우는 기술이나 재주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부분들을 그래도 열심히 해놓으면 나중에 다 쓸모 있는 부분이 됩니다. 제가 그 증인입니다.(웃음) 그리고 또 하나는 음악을 어마어마하게 많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1970년대 말 중학교 시절부터 듣기 시작했던 팝, 록, 그리고 클래식까지 다양한 음악을 들으며 음향을 넘어 작·편곡을 꿈꾸며 그에 대한 연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2000년 미국으로 건너왔습니다. 음향과는 관련 없는 일을 5년 정도 하다가 2005년경부터 미디어 시스템 분야의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페이스북에 ‘장호준 음향 워크숍’ 그룹을 만들어 저의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또  2015년도부터는 오프라인 코스인 ‘믹스 마스터 클래스’라는 1주일 합숙 훈련 코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아마 제가 오하이오주에서 참여했던 단기 과정에 대한 효과를 아직까지 잊지 못해 만든 건 아닐까 생각되지만 그 코스에 참가하는 모든 분들께 최고의 성과를 만들어 드리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런 오프라인 코스를 운영하다 보니 삶의 계획에도 없던 ‘교육’의 부분에 마치 강제로 뛰어들어 이제는 그 일을 주요 업무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은 아마 일반 대중음악 일을 하지 않고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생각합니다.

만약 제가 대중음악을 하고 있었더라면 제가 지금 가지고 있는 제 안에 정립된 연구와 이론의 결과물을 만들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1990년대는 대중음악의 황금기였기 때문에 대부분 관계자 들은 음향의 연구나 교육을 신경 쓸 겨를도 없었을 것이고 아마 그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했을 것입니다. 대부분 관계자들이 잠잘 시간도 없는 시절이었으니까요.

그 당시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음향 엔지니어들이 공부에 대한 투자가 적다는 것이 가장 아쉽습니다. 하루 최소 5시간에서 10시간까지 연습을 하는 프로 뮤지션에 비해 음향 엔지니어들은 지식과 경험을 쌓는 일에 소홀한 것은 사실입니다.

쉽게 말해 요즘은 그냥 노트북에 헤드폰만 꼽아도 가능한 믹싱 공부를 하루 1시간은 고작 하고 30분이라도 하시는 분들이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환경이다 보니 당연히 업계에서는 7년에서 10년은 기본적으로 해야 사운드가 나온다라는 이야기가 법칙처럼 떠돌게 된 것 아닌가 생각되고요.

이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의 1순위는 무조건 ‘시간 투자’입니다. 그냥 무작정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을 최대한 단축시킬 수 있는 ‘지름길’을 찾도록 노력해야 하고요. 10년에서 15년 이상 실무에 종사하는 분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한결같이 ‘맨 땅에 헤딩’하는 시간들이 너무 길었다고 후회를 하십니다.

구체적으로 명확한 방법론을 가지고 공부를 하셔야만 합니다. 경험치의 극대화를 이야기하는 분들의 공부 방식은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 방법대로 하려면 그분들이 허비했거나 투자했던 시간 이상을 투자해야만 가능합니다. 문제는 그분들이 일했던 시대에는 음향을 하려 했던 분들이 아주 적었습니다. 음향 엔지니어가 보편화되어있는 현시대에서는 쉽게 답을 찾을 수 없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론이 중요합니다. 또 이론에 근거한 실제 활용 가능한 기술의 습득이 중요하고요. 더불어 이 이론과 기술을 접목 해나만의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시간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건 아무리 어마어마한 양의 가상악기를 사용해 믹싱 없이 그냥 풀로 붙여 만드는 음악을 한다 치더라도 음향 엔지니어만은 절대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더한다면 시간을 들여서 이래저래 만지고 다가 우연히 나오는 사운드가 결과물이라면 그것은 아직 기술이 아닙니다. 그건 그냥 ‘운’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기술이라면 예를 들어 킥 드럼은 길어도 1분 내에 ‘톤 쉐이핑’이 끝나야 합니다. 그렇게 해도 총 30 채널 분량의 입력이 있다면 30분을 해야 사운드 체크가 끝난다는 얘기가 됩니다.

1곡 믹스비 받고 1프로(3시간 반)에 해야 이 직업으로 돈을 벌게 된다는 이론입니다. 만약 이 작업이 일주일에서 한 달 이상 걸리면 스스로도 안 해야 하겠지요. 그렇게 목표를 잡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음향을 좀 할 줄 안다는 정도로는 해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요리를 예를 들어 보면 TV쇼에서 15분 내에 생전 처음 보는 요리를, 그것도 남의 집 ‘냉장고’에서 재료로만 요리를 해야 합니다.  이런 것이 요리업계의 경우는 거장들만 가능한 일이겠지만 음향 엔지니어는 언제나 누구나 이런 것들이 가능해야 한다고 봅니다. 15분 제한은 제외하고요.(웃음)

이런 것이 왜 꼭 음향 엔지니어들에게는 가능해야 하냐고요? 그만큼 장비와 기기가 날이 갈수록 업그레이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2002년 애플이 Logic의 제작사‘Emagic’을 인수하고 나서 누구나 쉽게 전문 믹싱 도구를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 믹싱은 그 이전의 시점과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고 봅니다.

그 이전까지는 개인이 절대 쉽게 구매하지 못하는 가격대에서 장비 가격이 존재했고요. 그러다 보니 악기 상가에나 가야 구경이라도 할 수 있던 것이 믹서였습니다. 물론 교회와 같은 공간에서는 예외가 되겠지요.

이러다 1994년경 ‘ADAT’가 나오고 국내에도 조금씩 들어오면서부터 개인이나 소규모 녹음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공연도 처음에는 낙원 상가 악기점에서 렌털 해주던 장비로 공연을 하다가 시장이 커지며 공연 전문회사들이 생겨났고 이들은 성장을 거듭하며 대형 회사로 변신하게 되기도 했죠. 이렇게 시장이 커지면서 100여 명 남짓하던 음향 인력이 엄청난 숫자로 늘어났다는 것이 가장 큰 변화라고 봅니다. 예전과는 접근성 자체가 달라지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시장은 비대 해졌지만 정작 ‘음향 엔지니어’라는 타이틀로 할 수 있는 공연은 다른 공연에 비해 극감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MR’이라는 국적불명의 이름으로 불리는 반주 음악을 틀고 가수들이 아무 악기 연주자 없이 아무렇지 않게 공연을 진행하게 되면서부터 라고 봅니다.

KPOP의 세계화에 걸맞게 한국 연주자의 실력이나 인력 규모도 나날이 발전하고 늘어나고 있으며 음향 장비와 엔지니어의 실력 역시 세계적 최고의 수준에 다다랐습니다. 이런 좋은 조건들 속에도 굳이 반주 틀어 놓고 공연을 한다라는 것은 참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물론, 연주자들 연습하고 비용을 더 지불해야 하고, 악기도 필요하고,, 그래서 그냥 가수가 음원에 맞춰서 노래하는 행사 같은 공연이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콘서트인데 그냥 뮤비에서 보던 것과 똑같은 장면을 실제로 본다라는 정도로 끝나기는 안타깝다는 것입니다.

라이브 밴드 없이 공연을 한다라는 것은 예의가 없는 공연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는 외국 아티스트의 공연과 비교한다면 많은 아쉬움이 남게 됩니다. 엄청난 댄스와 퍼포먼스의 자랑하는 마이클 잭슨이나 비욘세도 반주를 틀고 공연한다는 이야기 들어보셨나요? 저는 못 들어봤습니다.

프로툴즈 스템 믹스와 타임코드 싱크 맞춘 메트로놈을 트는 한이 있더라도 꼭 실연자의 연주가 함께 하는 공연의 기본적인 매너로 자리 잡았으면 합니다. 솔직히 현재 해외 거주 중이라 한국 내의 구체적인 상황과 정책에 대해서 잘 모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MR이 사용되지 않는 순수 음악을 할 수 있는 무대가 각 지역에서 활발하게 열린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창동 프로젝트’라던지 이번에 가평에서 열리는 행사 등 지방 정부의 이벤트들이 잘 진행되어 라이브 밴드의 활성화를 이루어 내길 바랍니다.

그리고 국가차원에서도 실제 실무를 담당하시는 분들이 만든 기획서 안에 담긴 좋은 내용들이 모두 현실화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도록 그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고 봅니다. 위에서 언급한 여러 지방 행사들도 실무 담당자가 아무리 좋은 기획을 해도 주변 상황, 또는 실무 담당자의 윗 선에서 왜곡하고 변질시켜 국민들의 비난을 받는 것을 자주 봐왔습니다. 아마 이 분야에서 일하는 분들은 제가 어떤 말씀을 드리고 싶어 하는지 잘 이해해주시리라 생각합니다.

너무 부정적인 부분을 강한 것 같아 이제는 조금은 희망적인 일에 대해 말씀을 드리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현재 진행하고 있는 교육의 프로그램의 활성화를 위해 노력 중입니다. 현역 기사님들께서 흔히 말씀하시는 ‘당연히 걸려야 한다’는 수련의 기간을 많이 줄여드리는 과정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저만 경험하고 느낀 팁을 일방적으로 전하는 것이 아닌 학생 스스로 공부하고 터득해나갈 수 있는 강력한 이론적 배경과 구체적 기술 시연의 방법을 통해 학생 본인의 것으로 만들어주는 과정입니다.

www.themixschool.com

또 온라인으로 ‘themixschool.com’이라는 유료 사이트를 운영하고도 있습니다. 여기에는 현재 총 12개의 동영상 강좌 시리즈가 있어 리스닝 훈련부터 실제 믹싱 연습과 클리닉까지 누구나 쉽고 빠르게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최근 유튜브 계정(hj0102)으로도 동영상 강좌를 진행하면서 직접적인 교감을 통한 정보와 지식을 전달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존의 ‘핸드북’ 시리즈보다 조금 더 깊은 내용을 담아 출판을 준비하고 있는데 시장 진입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시중에는 많은 개론 서적이 나와있고 또 그다음 단계의 서적을 대중화하는 데는 어려움이 따릅니다.

2009년 출판된 다음 단계 전문서적이라 할 수 있는 ‘마이크로폰 핸드북’을 보면 출판된 지 10년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초판 2천 권이 아직 다 소진되지 않는 시장입니다. 현직 교수님들의 강의 교재 역할 정도에서 머무는 실정이 되어버린 것이죠.

이 문제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해보았는데 개인적인 결론은 한국 내에 아직도 믹싱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냥 개론 서적 정도 읽어도 먹고사는데 지장 없는 업계이기도 하고, 또 그런 입문자용 책을 읽어보지 않고 몇 달 알바만 해도 중소 규모의 행사 정도는 쉽게 커버하게 됩니다.

다들 그렇게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음향시스템 핸드북’도 첫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포기한 10년 이상의 경력자들도 많다고 합니다. 이번 인터뷰를 빌어 ‘같이 공부할 방법은 많이 만들어 놓았으니 제발 함께 공부하고 성장합시다’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20살 나이에 철없이 결정해 시작했던 음향 엔지니어의 일을 한지도 벌써 33년 차에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음향은 공부에 대한 투자가 장비에 대한 투자보다 무조건 우선해야 합니다. 정말 아이러니하게 음향은 공부를 하게 되면 필요한 장비가 점점 줄어듭니다.

제가 진행하고 있는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3일 차에 지나가면 자기의 장비나 플러그인 등을 중고시장에 올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사용하고 있는 DAW의 번들로도 충분한 사운드를 만들 수 있게 됩니다.  예전에는 들어갈 시장이 없었지만 지금은 시장은 너무나 커진 반면, 경쟁률도 치열해 스스로 얼마만큼의 실력을 갖추었냐가 가장 중요한 척도가 됩니다.

음향은 철저한 서비스업이자 감성 노동력입니다. 이러한 감성 부분을 키워내는 훈련도 지속적으로 해가며 2018년보다 더욱 성장할 수 있는 2019년도를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