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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gend Interview] K2 김성면

[김성면]

김성면은 1992년 그룹 ‘피노키오’의 리드보컬로 ‘사랑과 우정 사이’를 히트시키며 가요계에 데뷔했다. 서정성 가득한 가사를 담은 충실하면서도 완성도 있는 음악, 그리고 애절하고 가슴 저린 감성적 목소리로 많은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1994년 그는 이태섭과 함께 ‘K2’를 결성해 다시 한번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K2는 ‘슬프도록 아름다운’, ‘잃어버린 너’, ‘소유하지 않은 사랑’, ‘유리의 성’ 등은 드라마틱한 곡의 구성과 극적인 절정부를 잘 담아낸 곡으로 평가받는다.

또 그는 K2 활동 이외에도 작곡가로서의 면모를 함께 발휘하는데, 손지창의 ‘사랑하고 있다는 걸’, 더 블루(손지창, 김민종)의 ‘친구를 위해’ 등을 직접 작곡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기도 했다. ‘K2’의 이태섭이 팀을 떠나며 김성면은 ‘K2 김성면’이란 이름으로 꾸준히 음악 활동을 이어간다.

1997년 거의 모든 곡을 작사, 작곡을 해 2집을 발표했고, ‘소유하지 않은 사랑’, ‘재회’와 ‘그들만의 슬픔’(통일을 기다리며) 등 다양한 장르를 담아내며 뮤지션으로서의 입지를 굳히게 된다.

1999년 발표한 3집은 ‘그녀의 연인에게’, 김민종과 듀엣으로 부른 ‘널 위한 나’가 주목받았으며, ‘유리의 성’은 록 마니아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으며 록발라드 명곡의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K2’에서 ‘K2 김성면’으로 진화를 거듭하며 대한민국 록 발라드를 이끌어오던 그가 2006년부터 2017년까지 10여 년 간 대중 앞에서 자취를 감췄고 홀연히 사라졌던 ‘K2 김성면’을 만나 그간 대중 앞에 설 수 없었던 그의 지난 시간과 심경, 그리고 다시 만들어갈 ‘K2 김성면’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나눠봤다.

[K2 김성면]

레전드 매거진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K2 김성면입니다. 이렇게 저를 잊지 않고 찾아주신 레전드 매거진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오랜 공백 기간을 깨고 다시 여러분 앞에 설 준비를 하고 있던 찰나였기 때문에 이번 인터뷰가 더욱 반가웠습니다.

사실 2006년도부터 재작년, 2017년 정도까지는 저 개인적으로 거의 암흑기라 표현할 수 있는 시기였습니다. 2004년도에 제가 직접 제작해서 발표했던 4집 음반 이후 그 이전 소속사와의 갈등이 고조되며 결국 저는 그 문제로 정상적인 활동을 이어가지 못하고 결국 2008년에는 개인파산의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믿고 따랐던 소속사와의 갈등으로 제가 책임져야 할 금전적인 부분이 엄청난 빚으로 제게 돌아왔습니다. 저는 사실 22살 때 아버님이 뇌졸중으로 쓰러지시며 가장의 역할을 해야 할 만큼 가정 형편이 좋지 못했어요. 남동생과 여동생, 그리고 어머니, 병환에 계신 아버지까지 모두 제가 책임을 져야 했죠. 그렇게 어려운 환경에서 시작한 가수 활동을 했었고, 저는 이 가수라는 직업으로 우리 가족의 삶을 책임지겠다는 각오 하나로 이를 악물고 시작했는데, 이런 소속사와의 문제로 빚을 떠안게 된 것은 저에게 너무나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정신적으로도, 또 경제적으로도 음악에 전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머릿속에는 매일 ‘어떻게 돈을 구할까?’라는 고민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2013년도 지인분의 소개로 청주 서원대학교 실용음악과 초빙교수로 일을 하게 되었어요. 실용음악과가 처음 생기는 학교라 기본적인 학과 세팅부터 개인 레슨, 밴드 앙상블 등을 지도하는 일이었습니다.

[김성면, 그리고 팬]

2014년, 저는 당시 ‘인터파크 본부장’이었던 지인분이 합정동 ‘메세나 폴리스’ 공연장을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셔서 무사히 콘서트를 마칠 수 잇었고, 그렇게 저는 다시 사람들 앞에 설 수 있는 용기를 얻었습니다. 보통 콘서트는 최소 3개월 전 준비하며 홍보도 하고 해야 하는데, 저는 갑작스럽게 준비를 하다 보니 30일 만에 준비해 무대에 서야 하는 말 그대로 ‘게릴라 콘서트’처럼 준비했죠. 홍보가 아예 안되었을뿐 아니라, 겨우 인터파크 티켓에 작은 포스터 하나 달랑 올려놓았는데, 공연 1주일 전에 매진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팬분들께서 아직도 저를 잊지 않고 제 공연장을 찾아주셔서 너무나 감동적인 무대였습니다.

제게 더 감동적으로 다가왔던 것은 그전에 ‘나는 가수다’나 ‘복면가왕’ 등의 무대에 설 기회가 몇 번 있었는데 다른 소속사와의 경쟁에서 밀려 항상 출연이 무산되었어요, 그렇게 제가 설 수 있는 무대의 기회를 번번이 놓치던 기억 때문에 더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렇게 다시 활동 아닌 활동을 시작한 저는 다시 ‘복면가왕’ 출연에 도전했지만 연락을 받지 못하고 마냥 기다리고 있던 어느 날이었어요, 아버님께서 요양원에서 계시다 갑자기 건강이 악화되어 다른 요양원을 옮기던 상황에서, 어머님까지 갑작스럽게 건강이 악화되셔서 제가 어머님까지 병원에 모시고 다니며 부모님을 챙기느라 정신이 없었을 그 때 마침 방송국에서 연락을 받았습니다.

1주일 뒤에 ‘복면가왕’ 출연하겠냐고요? 저는 다른 가수의 ‘대타’라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을 챙겨드리기 위해서는 저는 무슨 일이든 해야 했습니다. 마음의 준비도 안 된 상태였고 노래를 준비할 시간도 없었는데 무리하게 참가를 한 거죠. 물론 그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이 방송은 결국 저에게 자충수가 되었던거죠.

저는 ‘복면가왕’ 이후 ‘김성면이 예전 같지 않다’나 ‘김성면은 이제 더 이상 아닌가 보다’등의 악플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거기에 제가 이런 상황에서 급하게 나가다 보니 준비가 안 되었다고 얘기를 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던 중 다시 ‘슈가맨’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저에게 실망했던 분들의 실망을 조금은 만회할 수 있는 좋은 무대를 만들었습니다. 특히 편하게 방송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유재석 씨와 김제동 씨가 많이 도와줬어요다. 제 녹화 당일에는 유희열 씨가 해외 일정 때문에 김제동 씨가 대신 진행을 맡았거든요. 이분들이 편하게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렇게 아름아름 방송 활동을 이어가고 있던 2017년, 저희 팬클럽에서 2017년이 데뷔 25주년 되는 해이니 이렇게 그냥 보낼 수 없다며 팬클럽에서 콘서트 무대를 만들어주겠다고 했어요. 저는 감히 팬 분들께 민폐를 끼치는 것이 싫어 몇 번을 고사하다가 결국 팬분들의 마음을 받아 홍대에서 300석 규모의 공연장에서 ‘25주년 콘서트’를 열었습니다. 저와 팬분들 모두 하나가 되어 함께 노래하며 감동스럽고, 또 잊지 못할 즐거운 추억이 될 수 있는 공연을 만들었습니다.

2018년에는 또 다른 팬 분께서 ‘에메랄드 캐슬’과 조인트 콘서트를 직접 만들어보고 싶다고 하더군요, 에메랄드 캐슬 베이시스트 ‘김영석’군이 제 친한 친구이고 그 친구는 예전 넥스트 밴드의 베이시스트였습니다. 그래서 2004년 신해철씨를 뺀 나머지 넥스트 멤버들이 결성한 ‘노바소닉’ 밴드와 함께 제 4집 음반 전국투어를 함께 공연을 했습니다.

그런 인연으로 2018년 ‘에메랄드 캐슬’과 함께 전국투어 공연을 했어요. 이 공연을 계기로 올 3월에는 김영석 군과 ‘에메랄드 캐슬’과 함께 ‘투 캐슬’이란 이름으로 디지털 앨범 음원을 발매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5월 17일과 24일 이틀간 ‘지금 1위는?’이라는 방송에 출연하며 공중파 활동을 재개하기 시작했어요. ‘지금 1위는?’은 MBC에서 새로 편성된 프로그램인데 요즘 아이돌들이 예전 노래를 불러 순위를 경쟁하는 그런 프로그램입니다.

그리고 올여름이나 가을경에는 미국 뉴욕과 할리우드에서 콘서트를 할 계획으로 추진 중인데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라며 열심히 준비 중입니다. 1990년대 왕성히 활동할 때부터 미국 공연 제의를 많이 받았었는데 번번이 무산된만큼 이번 공연은 꼭 성사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인간 김성면]

지금이야 다시 일어서는 단계라 제 지난 이야기를 편하게 말씀드릴 수 있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떠올리기조차 싫었습니다. 과거에 얽매이는 저 자신이 너무 싫었죠, 아주 오래전으로 돌아가 소년 김성면의 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웃음)

사실 저는 어릴 때부터 선생님들께서 공부를 열심히 한다며 칭찬을 자주 해주셨어요. 그렇게 선생님들께서 칭찬을 해주시는 것 자체가 너무 즐거워 공부를 더욱 열심히 했죠.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 있잖아요? 그렇게 공부에 자신감이 생긴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3학년 때까지 반장을 놓친 적이 없었고, 전교 1~2등 자리를 유지하며 전교 회장을 한 적도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중학교 3학년 당시 담임선생님께서 집으로 전화를 하셔서 아버님께 직접 말씀하시길, 제가 살던 지역보다는 여의도 쪽이 학군이 좋으니 그쪽으로 전학해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서울대는 문제없을 거라 하셨고 저희 가족은 담임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여의도로 이사해 저는 ‘여의도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됩니다.

여의도는 당시 새로운 문화가 빠르게 유입되는 신도시 같은 곳이었고, 저는 거기에서 학생들이 만든 ‘밴드’와 ‘축제’에 매료되었습니다. 모범생으로 자라온 저에게는 하나의 돌파구처럼 느껴졌었죠. 저도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용기를 내어 친구들을 모아 ‘나르시스’라는 밴드를 만들어 활동했어요.

저희 밴드는 록과 헤비메탈 장르의 음악을 연주하는 밴드였습니다. 모범생이었던 제가 공부가 아닌 음악에 심취해 있는 모습을 보고, 무지 엄하셨던 아버님께서 실망하시고 노여워하실까 두려워 집에는 음악한다는 얘기도 못했어요. 그렇게 취미로만 즐기던 음악으로 뜻하지 않게 ‘가장’이 되어버린 저는 이 음악으로 미래를 걸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여러 군데 데모 테이프를 보냈는데 그 중에 ‘피노키오’라는 그룹에서 객원보컬 제의가 들어왔고, 저는 제의를 받아들여 ‘피노키오’ 그룹에 참여하게 됩니다. ‘사랑과 우정 사이’라는 곡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사랑과 우정사이’의 작곡가 오태호는 당시 음악하던 선배 누나의 소개로 알게된 저보다 한 살 어린 동생이었어요. 서로 자주 만나 술잔을 기울이며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친구처럼 친하게 지냈어요. 그렇게 둘만의 친분으로 제가 직접 태호에게 어렵사리 받은 곡인데, 회사 사정상 PR을 할 여건이 안되었고, 소속사와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며 결국 저희는 회사를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마침 한국에 노래방 문화가 상륙하던 때였어요. 저희 노래 ‘사랑과 우정사이’가 노래방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하더니, 노래방 애창곡 순위 1위를 차지하게 되었어요. 그게 앨범 발매한지 2년 후였고, 저희는 한참만에 ‘가요톱10’ 무대에서 소속사도 없는 상태로 1위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지금 ‘역주행송’이라 불리는 곡들의 원조격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 곡을 끝으로 저는 피노키오에서 탈퇴해, 서태지의 ‘하여가’에서 기타 연주를 했던 ‘이태섭’이란 친구와 함께 ‘K2’라는 프로젝트 그룹을 만들게 됩니다. 그때 저는 이미 ‘슬프도록 아름다운’을 만들어 놨던 터라 이거 하나면 될 거라는 각오로 이태섭 군과 그룹을 만들게 된거죠.

새롭게 결성한 ‘K2’, 그리고 제가 야심 차게 숨겨두었던 보물 같은 노래 ‘슬프도록 아름다운’으로 저는 다시 무대에 설 준비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저는 음반 발표 직전 군대 영장을 받게 됩니다. 그렇게 저는 K2의 꽃도 펴보지 못하고 바로 군에 입대합니다. 그렇게 K2는 데뷔도 하기전에 끝이 나버렸고, 제 음악 인생도 침체기에 접어드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군대에 있는 동안 ‘슬프도록 아름다운’ 음반이 40만 장이 팔리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어요. 이 기록이 경이로울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당시 스타덤에 올라서 이름을 알리게 된 ‘피노키오’라는 이름을 쓰지도 않았고, K2라는 전혀 다른 생소한 이름으로 대중앞에 새로운 음반을 내게 된 거죠. 당시에는 1집이 히트치면 2집은 10만장은 깔고 간다는 통설이 있었죠.

저는 그룹 이름도 바꾼데다가, 더불어 보컬인 제가 군대에 있어 활동을 해보지도 못한채 앨범만 나와씨던 상태에서 40만장이 나갔다는 사실은, 실로 경이로운 기록이 아닐수 없다라 생각합니다. 습니다. 이 앨범이 히트를 하며 많은 음반사에서 거액의 계약금을 제시하며 저에게 다가왔지만, 저는 모두 뿌리치고 의리를 지키기 위해 알고 있던 기획사와 계약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서로 믿었기에 계약서도 필요없었습니다. 어느날인가 제 매니저가 투자자들에게 소속 가수들이 회사 소속이란 것을 증명하는 차원에서 보여주는 용도로만 사용할 것이라며 ‘소속 증명’ 뭐 그런 서류를 가지고 왔어요. 저는 잠결에 무심코 도장을 찍어줬죠. 저는 2~3년 뒤에 소속사를 옮기기 위해 얘기를 나누던중 그 서류가 계약서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렇게 인간적인 배신과 함께 경제적인 고난과 안겨주었고, 또 이 계약서는 아직까지도 저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그렇게 수많은 우여곡절을 거치며 지금까지 왔고, 이번 5월이나 6월경 저와 함께할 새로운 소속사와의 계약을 앞두고 있습니다. 제가 소속사의 필요성을 느끼는 것은 지난 복면가왕 등의 방송 활동을 할 때도 그랬고, 또 2017년 디지털 음원 2곡을 발표할 때 뼈저리게 느꼈죠.

아무리 열심히 하려 해도 PR을 해주고 저를 관리해줄 회사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죠. 그리고 제가 가지고 있는 가진 가장 큰 딜레마를 해결해줄 지원군이 필요하기도 했어요. 사실 제 노래는 대부분 사람들이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노키오, K2, 김성면 등으로 나뉘어 통일이 안되어 있어요. (웃음)

저는 영향력 있는 PR 활동을 통해 지난 제 노래들과 제가 해왔던 일들을 통일시켜 다시 제가 음악 생활을 해나갈 수 있는 초석으로 다져졌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심지어 아직도 동창들이 ‘사랑과 우정 사이도 네가 불렀어?’라고 놀라는 친구들도 있어요. (웃음) 대다수 사람들이 K2와 피노키오를 분리해서 생각하더라구요.

[마지막 메시지]

제가 지금 가장 우선적으로 하고 싶은 일은 비록 늦은감은 있지만, 지금처럼 꾸준히 방송 활동을 해서 제 곡들과 가수인 저 자신이 재조명을 받아 사람들의 인식에 통일되게 각인되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것이 제가 지금까지 했던 노래를 모두 모아 리메이크 앨범을 만들고 싶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물론 ‘K2 김성면’이라는 이름으로 만들것이구요.

그리고 저를 사랑해 주셨던 팬분들을 위해 활동을 이어가야겠죠. 여중생이던 어린 학생들이 이제는 애엄마가 되었는데도 아직도 저를 응원해주는 모습을 보면 정말 눈물이 나죠. 옛날 제가 활동 접기 전까지는 팬들과 같이 정기적으로 체육대회도 하고 그랬어요. MT도 가고. 웬만한 팬들과 팬클럽 임원진의 결혼식에서는 축가를 불러드리기도 했죠. 다시 한번 그분들을 위해 멋진 모습으로 당당히 일어서려 합니다.

그리고 이건 약간 개인적인 의견인데, 우리나라 방송 산업 시스템이 조금은 더 넓은 폭으로 역량을 넓혀가기를 바랍니다. 지금의 음악방송은 완벽히 10대에 맞춰진 그들만의 소유물이 되었습니다.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 지금도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방송에서 소개해주고, 이런 방송을 접하는 10대들은 자기 취향에 맞는 음악을 선택할 수 있는 ‘ 선택권’을 가지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예나 지금이나 한 시대에 유행하는 한 장르에만 몰아주기식 경향이 상당히 심한 편입니다.

이런 방송 시스템이 개선되어 획일화된 트랜드적인 음악뿐만 아니라, 여러 다양한 음악이 공존하고 있고 그 중에 너희가 원하는 음악을 선택해 듣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음악감상법이란 것을 10대들엑 알려줄 수 있는 시대가 오기를 바랍니다.

예전 가요톱10 시절만 해도 온 가족이 함께 보며 아버님이 좋아하는 노래, 어머님이 좋아하는 노래, 또 내가 좋아하는 노래 모두 즐길 수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그런 방송은 없습니다. 세대를 완벽히 분리시켜놨죠. 예전의 벙 송이 세대 간 소통하고 융합할 수 있는 ‘매개체’ 역할을 했다면 지금의 방송은 철저히 세대 간의 융합을 억지로 분리시켜 놓습니다. 그런 상황이 너무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이 트렌드라는 것을 돌고 돌겠지만, 트렌드가 다시 돌아와도 그 트렌드를 담아내는 시스템이 바뀌어 있지 않다면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어차피 새로운 것이 나와도 그 새로운 것에만 몰두할 것이 번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돈이 되니까. 광고가 붙으니까.

‘광고’란 단어가 또 하나의 사회적 병폐를 생각나게 하네요. 사실 ‘유튜브’라는 채널은 이상적인 방향으로 활용만 된다면 정말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일 것입니다. 내가 만들고 있는 DIY 탁자를 만드는 법을 동영상으로 배울 수도 있고, 또 ‘아이슬란드어’와 같이 한국에서 배우기 힘든 언어들도 너무나 쉽게 배울 수 있습니다. 이런 학습이란 긍정적인 명이 너무나 강함에도 불구하고 요즘 대한민국에서는 자신의 유튜브에 광고 붙이기에 형란이 되어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는 이 사람들을 ‘유튜버’라는 이름까지 지어주며 그들에게 관심을 가져줍니다. 그러다 보니 그들은 ‘좋아요’와 ‘구독’을 구걸하기에 이릅니다. 조회수가 올라야 광고가 붙으며 그 광고로 수익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러다 보니 이 조회수를 올리기 위해 자신의 아내, 부모님, 자식들을 내세워 가족의 일상을 보여주거나, 또는 그들이 원하지 않는 가족의 모습을 담아 공유하기도 합니다.

이런 병폐가 끊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 유튜버들이 조회수에 목숨 거는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바로 조회수를 높여주고 좋아요와 구독을 눌러주는 사람들이 간혹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십시일반 모인 조회수가 붙여준 광고에 이 유튜버는 환호하고 기뻐합니다. 문제는 그들 대부분이 만들어낸 콘텐츠가 정상적인 범위에서 벗어난 콘텐츠가 많다는 것입니다.

물론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음악가, 그리고 아티스트를 포함한 콘텐츠 제작자가 유익하고 이로운 콘텐츠를 제작해 많은 분들에게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대중 여러분들께서도 좋은 콘텐츠, 나쁜 콘텐츠를 식별하고 구분해 수용할 수 있어애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에서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 그리고 콘텐츠를 들기는 사람 모두 즐겁고 행복하게 항상 즐길 수 있는 건강한 콘텐츠가 만들어지길 바랍니다.

그리고 저 또한 이런 깨끗하고 올바른 음악을 만들어 여러분께 사랑받고 인정받는 가수 김성면이 될 것을 약속합니다. 제가 이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은 바로 오랜 시간, 10년 이산 활동을 하지 않던 저를 기억하고 항상 제 곁에 있어주셨던 팬분들을 위해서입니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가 활동을 1년만 쉬어도 철새처럼 바로 다른 가수의 팬이 되어버리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만큼 골수팬을 유지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시대가 되었죠. 너무나 감사하게도 저의 팬분들은 제가 10년을 쉬었다가 작은 콘서트를 할때도 어김없이 저를 찾아와주셨고 매진 사례라는 감동을 저에게 선사해 주셨어요. 제가 팟캐스트에 나가거나, 복귀할 때면 잊지않고 응원의 댓글을 달아주시는 많은 팬분들, 그리고 십수년 전 어느 대학 축제에서 저의 무대에 감명받았다며 반갑게 저를 맞아주시는 모든 분들이 지금까지 제가 버틸수 있었던 원동력이었습니다.

이런 팬분들의 사랑에 보답하고자 저는 올 가을이나 겨울에는 제가 4~5년동안 야심차게 준비했던 노래 두곡 발표할 예정이고, 이 앨범을 새로운 소속사와 준비할 생각입니다. 지금 진행중인 계약이 잘 마무리되면 올 가을경에는 단독 콘서트로 여러분 앞에 설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보기도 합니다. 단순한 기대가 아닌 팬분들과의 약속이라 생각하고 꼭 지켜내겠습니다. 앞으로의 저의 행보에도 많은 기대와 성원, 그리고 관심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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