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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GEND INTERVIEW] 뮤지컬 음악감독 이성준

‘제8회 뮤지컬 어워드’에서 ‘올해의 뮤지컬’을 비롯해 9개 부문의 상을 휩쓴 대한민국 창작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은 뮤지컬 음악감독 이성준의 손끝에서 만들어졌다.

어머니의 영향으로 7살 때부터 기타를 시작한 그는, ‘프란시스코 타레가 국제 기타 콩쿠르’ 파이널리스트를 비롯하여 여러 국제 기타 콩쿠르에 입상한 장래가 촉망받는 기타리스트였다. 그런 그의 가슴 한편엔 언제나 뮤지컬에 대한 열망이 있었고, 대학을 다니며 뮤지컬 공부를 병행하기 시작한다. 점차 뮤지컬에 가까워져가며 현장에서 직접 경험을 쌓던 중, 장유정 연출가를 만나 2005년 <오! 당신이 잠든 사이에>로 음악감독을 맡으며 데뷔하게 된다.

그 뒤 <잭 더 리퍼>, <삼총사>, <프랑켄슈타인>, <벤허>에 이르기까지 그가 손길을 거친 작품은 연일 화제와 흥행을 불러일으키며 명실상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뮤지컬 음악감독으로 자리매김하였다.

뮤지컬 음악감독

이성준

반갑습니다. 레전드 매거진 구독자 여러분. 저는 뮤지컬 음악감독 이성준이라고 합니다.
현재는 창작 뮤지컬 <벤허>에서 음악감독을 맡아 작곡과 지휘를 하고 있으며,
단국대학교 뮤지컬전공 주임교수로 더 좋은 뮤지컬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달리고 있습니다.

피아노와 기타 그리고 오케스트라

저희 어머니가 피아노 학원 선생님이셔서 4살 때부터 피아노를 접하기 시작했어요. 어머니가 보시기에 곧잘 따라 하니까 귀가 좋다고 판단하셨나 봐요. 그래서 현악기를 시키고 싶어 하셨는데 바이올린이나 첼로는 평범하다고 생각하셨는지, 남들이 잘 하지 않는 클래식 기타를 권하셨어요. 저도 피아노보단 기타에 흥미가 있었던 것 같아요. 솔직히 너무 어릴 때라 잘 기억나지 않지만 무언가 공부보다 재미있어하던 기억이 있어요. 학창시절엔 아이들과 어울려 놀기를 좋아했고 악기 연주를 발표하는 것에도 관심이 많으며 때론 짓궂기도 한 활동적인 아이였어요. 그리고 오케스트라에도 관심이 많았어요. 초등학교 5학년 때 정명훈 지휘자 선생님이 바스티유 오케스트라에 계셨는데 그때 오케스트라를 라디오를 통해 들으며 감동했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어요.

초등학교 시절엔 기타와 피아노 병행했었는데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하나를 선택하는 갈림길에 섰던 기억이 나요. 피아노는 손톱이 짧아야 하고 기타는 길어야 한다는데서 시작된 고민이었는데 어렵지 않게 기타를 선택했어요. 피아노는 항상 같은 곳에 벽을 보고 연습하는 것에서 외로움을 느꼈어요. 반면 기타는 자유롭게 들고 다니면서 어디서든 연주할 수 있고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연주하는 데에 재미를 느꼈나 봐요. 제 연주에 맞춰서 누군가 노래를 부른다던가 시를 읽는 것에서 재미를 느꼈어요. 또 드라마 음악에 흥미가 있었는데, 작곡을 하고 싶다기보단 기쁠 때 밝은 음악이, 슬플 때 어두운 음악이 흘러나오면 더 작품에 빠져들고 몰입되는 그런 상황에 관심이 많았어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로 시작된 뮤지컬과의 만남

기타로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는데 다소 보수적인 분위기의 클래식한 학교였어요. 당시엔 뮤지컬을 대중 예술로 보지 않는 시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학교에서 뮤지컬을 접하기 쉽지 않았어요.

그런데 우연한 계기로 뮤지컬 동아리에 가입하게 돼요. 노래와 연기를 잘하는 학교 선배의 권유로 시작된 건데, 그렇게 노래와 연기를 연습하며 뮤지컬에 대해 알아갔어요. 그러던 중 우연찮게 학교에서 단체로 뮤지컬 <웨 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관람하러 갔어요. 클래식과 팝적인 요소가 한데 섞인 데다가 어릴 때부터 관심 있던 사람의 마음을 유도하고 뒤흔드는 음악까지 제 워너비가 한데 어우러진 그런 공연이었어요. 그렇게 전 뮤지컬에 푹 빠지게 되었죠. 사회 분위기로 인한 부모님의 반대, 학교의 반대, 그리고 기타 선생님의 반대까지. 숱한 반대에 부딪혔지만, 주변에서 하나같이 반대만 하니까 오히려 더 빠져들었어요. 그렇다고 어른들의 뜻을 어길 용기가 있던 것은 아니었기에 뮤지컬은 계속 워너비로만 남아있었지 무언가 행동으로 옮기긴 어려웠고 기타를 계속 공부 했었어요. 뮤지컬에 나오는 노래를 듣고 기타로 연주하는 게 저에겐 쉼터이자 취미였죠.

뮤지컬에 대한 제 열망은 점점 커져만 갔고, 대학교에서 뮤지컬을 공부하고 싶다고 부모님께 말씀을 드렸죠. 처음엔 반대하셨지만, 부모님이 원하는 대학교에 입학하면 허락해준다는 약속을 받고 결국 서울대학교에 입학 할 수 있었어요. 그렇게 해서 떳떳하게 뮤지컬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처음엔 뮤지컬 연출을 공부했어요. 공부하다 보니 음악감독의 길을 알게 되었고 대학교 4 학년 때부터 여러 뮤지컬의 음악감독과 관련된 아르바이트를 통해서 본격적으로 뮤지컬에 다가갈 수 있게 되었죠.

프란시스코 타레가 국제 기타 콩쿠르

대학교 1학년 때의 경험이었는데, 타레가 콩쿠르를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이 먹먹해져요. 아마 평생 기억될 추억으로 남을 콩쿠르에요. 알함브라 궁전으로 유명한 스페인의 기타리스트 타레가(Francisco Tárrega)의 고향인 베니 카심에서 3주 동안 진행되는 콩쿠르로 세계 3대 기타 콩쿠르라는 명성이 있을 만큼 규모가 크고 유명한 콩쿠르죠. 제가 해외 경연 대회에 많이 나가본 사람도 아니었기에 그곳 가는 것조차 큰 영광이었는데 한국인 최초로 파이널 리스트까지 입선한 콩쿠르였으니 더욱 특별하죠.

처음에는 그저 구경만 하려 했는데, 3주나 되는 긴 기간동안 진행되는 콩쿠르니 한번 도전해보기로 마음을 바꿨어요. 정말 많은 나라에서 수백 명이나 되는 연주자들이 참여한 무대였는데, 우연찮게 예선 1차를 통과하고 2차까지 통과하여 본선에 오르게 된 거죠. 수 백 명의 연주자를 뚫고 마지막 4명의 참가자가 본선에 진출하였는데, 본선까지 오르니 한국 대사관에서도 오시고 제게 많은 관심이 쏠렸어요. 1, 2차 예선을 치를 땐 편안한 마음으로 임했는데, 본선에 오르고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니까 욕심이 나서인지 제 연주에 만족하지 못했어요. 점수는 4명 중 3등으로 기억해요. 대한민국 최초의 타레가 콩쿠르 파이널 리스트로 기록됐죠.

타레가 콩쿠르에 참여하는 동안 정말 너무나 큰 경험을 했어요. 훌륭한 기타 연주자들도 놀라웠지만 한국과는 다른 새로운 문화 보게 됐어요. 콩쿠르를 페스티벌처럼 즐기는 모습이요. 아침 9부터 저녁 6~7시까지 콩쿠르가 진행되고 그 후에는 기타와 관련된 페스티벌이나 뮤지컬 관련 페스티벌도 개최했어요. 그래서 경연 대회에 나가지 않는 날은 아침에 연습하고 낮에 구경하고 저녁엔 공연을 보러 다녔는데 저에겐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콩쿠르를 다녀온 뒤 제 기타 행보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많아져서 감사한 경험이기도 하죠. 그 덕분에 기타 앨범도 낼 수 있었고요. 하지만 저는 기타만큼이나 뮤지컬에 대한 갈증이 계속 있었어요. 오히려 콩쿠르를 다녀온 뒤로 더 열심히 기타와 뮤지컬 공부를 병행하게 됐어요. 저에게 기타와 뮤지컬은 아빠와 엄마같이 누가 더 좋은지 말하기 어려운 둘 다 소중한 관계예요.

<잭 더 리퍼>와 <삼총사>를 시작으로 펼친 유명세

대학교 시절 음악 편곡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었어요. 저는 기타와 다른 악기가 합주하는 것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다른 악기를 편곡하는 일을 좋아했는데, 그것이 대학교 때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이 된 것이죠. 뮤지컬과 관련하여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뮤지컬 편곡이나 기타를 치는 일이었으니 자연스레 편곡을 하게 되었어요. 편곡을 하다 보니 때론 멜로디를 변형하고 싶고 여러 이유로 곡을 건드리기도 했지만 작곡은 하지 않았어요 좀 더 연륜이 더 쌓이고 난 다음에 곡을 쓰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뮤지컬을 더 공부할 겸 왕립 스코트 음악 연극 대학교로 유학을 다녀오기도 했고요.

정명훈 지휘자님의 오케스트라를 들어보면 정말 드라마틱 해요. 음악만 들어도 분노와 사랑, 열정을 느낄 수 있어서 정말 존경하고, 저도 그런 드라마틱 한 음악을 만들고 지휘하고 싶었는데 쉽사리 기회가 오지 않았어요. 뮤지컬은 한 작품당 적게는 20억에서 많게는 6, 70억원의 제작비가 들어가는 거대한 기획인데, 아무도 저 같은 신인 음악감독에게 커다란 돈이 좌지우지하는 대형 뮤지컬을 맡기려 하지 않았죠. 그런 저에게 <삼총사>와 <잭 더 리퍼>라는 미완성 뮤지컬을 맡아서 완성 시켜보지 않겠냐는 제의가 들어와요. 특히 <잭 더 리퍼>에서는 추가적인 곡이 필요한 상황이었고 작곡의 기회까지 함께 찾아왔어요. 그렇게 완성된 뮤지컬은 많은 분들에게 사랑을 받기 시작했고 그 사랑이 <프랑켄슈타인>까지 이어지게 되었죠. 그 과정은 험난하긴 했지만 기회가 너무 빨리 찾아온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꿈과 같은 길이 펼쳐졌습니다.

음악감독이 하는 일

뮤지컬의 막이 오르면, 뮤지컬 전체 스태프를 대표해서 인사하는 것으로 음악감독의 일이 시작이 됩니다. 무대에서 확인 가능한 음악감독의 일은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것인데, 지휘를 위해서 약 두 달 정도 배우들과 리허설을 하는데요. 우선은 합창 연습과 지휘를 하며, 주, 조연 배우들의 음악 연습을 돕고, 연출자와 음악의 길이나 빠르기를 조율하여 배우들이 어느 정도 안정화가 끝나면, 그 음악을 가지고 오케스트라 악단을 연습 시키고, 오케스트라 준비가 끝나면 극장으로 입성하여 음향팀과 협의를 하죠. 그렇게 음향이 어느 정도 안정이 되면 그다음엔 조명이나 무대 큐를 맞추고 정리하는 정말 많은 일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음악 감독은 평생을 공부해야 하는 직업인 것 같아요. 당연히 편곡을 해야 하고 종종 새로운 곡이 필요하기도 하고 음절이 안 맞을 땐 가사도 수정해야 하는 등 이런저런 일들을 많이 합니다. 요즘엔 많이 세분화가 되어서 보컬 코치를 따로 섭외하거나 지휘자 따로 섭외를 하는 식으로 운영하기도 하는데, 뮤지컬을 내 손으로 하나하나 완성시켜나가는 즐거움을 알게 되면 빠져나가지 못할 거 같습니다.

목숨을 걸고 임했던 작품들

프랑켄슈타인은 너무나도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아서 저한텐 과분하고 영광스러운 작품이고, 벤허는 아버지께서 매우 편찮으실 때 병간호를 하면서 곡 작업을 했기 때문에 더 각별한 작품이에요.

저는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을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어요. 제가 맡았던 작품들 모두 제 인생의 모든 것을 걸면서 작업해서 전부 소중하지만 제 손으로 만들어진 프랑켄과 벤허는 잊을 수 없죠.

제8회 더 뮤지컬 어워즈에서 프랑켄슈타인으로 음악감독상을 수상하셨어요. 수상 소감을 말씀해주세요.

“꿈꾸는 것만 같았어요. 당시에 화제도 많이 됐었고… 연일 매진 사례가 이어지는 걸 보면 정신이 혼미해지는 거 같았고, 때로는 우쭐거리기도 때로는 정말 현실인지 의심하기도 했어요. 많은 사람들의 노력, 열정, 행운 그 리고 여러분의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던 거 같아요. 다시 한번 관객 여러분의 관심과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취미생활과 하루 일과

하루 일과는, 제가 욕심쟁이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음악 감독과 교수직을 병행하고 있어서 24시간이 모자라요. 오늘도 아침에 교직원 연수를 받고 왔는데, 보통은 학교 관련 일과로 하루가 시작 되서, 오후에는 리허설과 공연 연습 그리고 캐스팅 오디션 등 뮤지컬 준비를 위한 업무를 보고, 저녁에는 뮤지컬을 지휘하거나 다른 뮤지컬이나 콘서트를 보면서 공부하고, 책이나 음악을 들으며 어떤 음악을 추구할지 고민하고 연구하는 시간을 가져요.

저는 뮤지컬을 너무나도 하고 싶었고 기타도 놓고 싶지 않았기에, 둘을 함께 병행하다 보니 따로 취미가 따로 없었던 것 같아요. 취미가 기타인지, 뮤지컬인지 모를 정도로 정신없게 살아왔는데, 유일하게 즐기는 취미가 있다면 일요일 밤 12시에 뮤지컬 배우와 스태프가 모여서 함께 축구를 하는 시간을 가져요. 새벽 2시까지 하는데 거의 7~8년째 쉬지 않고 나가고 있어요. 저한텐 정말 소중한 시간이고 어떤 일이 있어도 보장받고 싶은 시간입니다.(웃음) 사실 저한테 여가가 필요 없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축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치지 않는 거 같습니다.

뮤지컬계의 마이다스의 손, 그 비결은?

우선은 이렇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하고 저도 제가 손대는 작품마다 흥행과 화제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어떤 작품을 맡던 항상 제 목숨을 걸고 제작에 임했어요. 그리고 디테일을 잊지 않으려고 정말 노력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첫 번째 관객인 제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떤 사람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는 이념 아래, 모든 편집에 다 타당한 이유를 들어가며 스스로를 설득시키는 일을 해요. 여기는 왜 슬픈 음악이 필요한지, 여기는 왜 음악이 깔리지 않고 오직 대사만으로 진행하는지 같은. 여러 가지 장면을 합리화시키며 만들어내는 것이 비결일지도 모르겠네요. 저는 매 순간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작품을 임합니다. 그래서 동시에 많은 작품을 진행하는게 어려워요.

제가 <벤허>라는 작품을 준비하면서 굉장히 많은 열과 성을 다해서인지, 다른 작품에 몰입을 해야 하는 시기가 왔는데 그러지 못한 적이 있어요. 휴식이 필요했나 봐요. 앉으면 텅 빈 듯 멍해지는 시간들이 이어졌어요. 그것을 탈피하는 데 다소 시간이 걸렸고, 앞으로 뮤지컬을 얼마나 더 할 수 있을지에 대한 두려움도 생겼어요. 그런데 그런 두려움과 동시에 <벤허> 공연 중 관객들에게 받은 박수와 환호, 거기서 오는 카타르시스는 그 무엇으로도 형용할 수 없어요. 그것이 또 다른 원동력으로 다시 오늘을 달릴 수 있는 힘이 되어 절 지탱하고 있습니다.

근황

<삼총사>의 주역 4인방 엄기준, 유준상, 민영기, 김법래와 함께하는 엄유민법 콘서트와 앨범을 준비 중이고, 제 고등학교 친구이자 <벤허>에서 벤허 역을 맡았던 카이라는 친구의 앨범과 콘서트도 함께 하기로 하였어요. 그 두 가지를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홍콩의 유명 영화인 영웅 본색이라는 작품을 뮤지컬로 개발하기 위한 준비와 곡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12월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고요.

<We Will Rock You> 라는 동명의 퀸의 음악을 주제로 한 주크박스 뮤지컬도 진행 중이에요. 뮤지컬의 처음부터 끝까지 퀸의 음악으로만 만들어진 뮤지컬로, 마찬가지로 12월에 인사를 드릴 예정입니다. 보헤미안 랩소디를 10번 가까이 본 사람으로서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저의 모든 열과 성을 다해서 만들어보겠습니다. 너무 바쁘고 정신없는 일정이지만 제가 어딘가에 쓸모가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음악감독으로서 힘든 점

사실 저는 별로 어려움을 겪지 않은 것 같아요. 벤허를 준비하면서도 얼굴을 찡그리는 일 없이 그저 행복하게 했어요. 오히려 제가 주목을 많이 받고 행보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다 보니 그에 보답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가끔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 같아요. 물론 여러분이 주시는 관심과 응원은 언제나 감사하고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음악 감독의 일을 한번 생각해보세요. 제가 쉬고 있을 때도 사람들이 제 음악을 가지고 연습하며, 제 음악으로 장난도 치고, 제 음악에 맞추어서 무대를 꾸미고, 어딜가나 제 음악에 맞춰서 여러 스태프들이 분석하고 연구하고 연습하며, 제 음악을 더 빛나게 해주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데 제가 어찌 어려움을 겪을 수 있겠어요. 그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감사할 뿐이죠. 어릴 때 상상만 했던, 저한테는 마치 우주여행처럼 멀고도 불가능한 일이라 여겼던 일들이 현실로 이루어져 제가 좋아하던 배우와 함께 공연을 하고 제 지휘에 맞춰서 이루어지는 멋진 오케스트라를 듣고 있노라면 감사하고 행복한 마음뿐입니다.

나를 이끄는 원동력

관객들의 박수와 응원에 힘을 얻지만 여전히 제 작품에 만족하지 못하는 갈증이 있어요. 교수로서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에 정진하는 사랑하는 제자들을 위해서 함께 하는 무대를 만들고 싶은 욕심도 있고요. 제자들이 마음껏 놀 수 있게 음악을 만들고 무대를 만들어 주는 것이 제 일인 것 같아요. 그들의 눈빛과 흘리는 땀, 그리고 열정을 보고 있으면 쉬기가 어려워져요. 저를 믿고 따르며 의지해주는 제자들을 보면 큰 책임감을 느껴요.

인터뷰 전문은 레전드매거진 8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