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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GEND INTERVIEW] 오지 레이서 ‘유지성’

한국인 최초 사막 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잘 노는 사업가

오지 레이서 ‘유지성’

안녕하세요, 레전드매거진 구독자 여러분. 저는 사막을 달리는 남자 유지성입니다.
포털사이트 프로필상에는 울트라마라톤 선수, 작가, 아웃도어 스포츠 코리아의 대표 등 여러 가지가 나열되어 있는데
워낙 이 분야를 좋아해서 오랫동안 하다 보니 전문가가 되어 관련된 다양한 기회들과 만나게 된 것 같습니다.

제가 처음 트레일 러닝에 입문하던 때의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그때는 그저 평범한 회사원이었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전공을 살려 건축설계 쪽 일을 시작하여 바쁜 나날을 보내던 중 아프리카로 해외 발령을 받게 되 었어요. 일하던 도중 창밖 너머로 사막을 달리는 사람들을 무심코 보게 되었는데, 형용할 수 없는 뜨거운 무언가가 제 안에 솟구침을 느꼈어요. 그들의 달리는 모습이 제 안의 질주 본능을 자극한 거죠. 순간 야생의 치타가 되어 사막을 달리는 제 모습을 상상해 봤어요. 지금 와서 돌아보면 그 순간은 제 삶이 완전히 뒤바뀌는 변환점이었던 것 같아요.

그날 이후 2년간의 고민 끝에 회사를 그만뒀어요. 사막에 가야겠다고 결심하면서는 무작정 걷기 운동과 함께 다이어트부터 시작했어요. 당시 저는 체중이 97kg에 육박하는 거구였고, 운동 경험도 전혀 없었기 때문에 사막에서 달리기를 하기에 최적화된 날씬한 몸을 만드는 게 목표였죠. 일단 동네에 있는 학교 운동장 걷기부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열 바퀴 걷기가 목표였는데, 그마저도 힘들어서 걷고 난 다음날이면 몸살로 앓아눕기가 다반사였어요. 그래도 비가 오건 눈이 오건 매일매일 꾸준히 걸었어요. 걷는 거리가 늘어나면서 체중도 눈에 띄게 줄었고, 속도도 점점 붙어 나중에는 뛰어다닐 수도 있게 되었어요. 그렇게 10km를 넘기고 30km를 넘기고.. 6개월 동안 총 18kg를 감량하며 다이 어트에 성공하고 사하라 사막으로 갔어요. 지금도 드물지만 당시만 해도 오지의 사막에서 펼쳐지는 러닝대회에 참가하는 사람이 한국에 몇 명 이나 됐겠어요.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도 없으니 모든 준비 과정 하나하나를 제가 직접 알아보며 진행했어요. 실은 어떻게든 되겠지 싶은 마음이 컸어요. 그때 제 나이가 서른한 살이었는데, ‘두려워하지 말자’는 말을 되뇌며 세상에 한 사람 오로지 저만 믿고 사막으로 향했어요. 막상 가 보니 어려운 건 하나도 없었어요. 오히려 별것 아니다 싶었죠. 첫 레이스를 통해 뭐든지 직접 해 봐야 알게 된다는 믿음이 제 안에서 확실해졌고, 생각을 오래 할 시간에 실행을 한 번 하는 편이 훨씬 낫다는 것도 깨우치게 되었어요.

Q. 긴 여정의 시작이 그때부터였군요. 말씀하신 내용은 2002년 모로코 250KM 사하라 사막 레이스 완주 경험에 대한 이야기죠? 우리 주변에는 대표님처럼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자기가 원하는 길을 개척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종종 눈에 띄는데 반해 실천에 옮기는 경우는 극히 드물어요. 당시에 대표님은 어떤 마음으로 인생을 뒤바꿀만한 큰 결심을 하게 되셨나요?

단순하게 살자. 그게 전부였어요. 고민을 깊게 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고민만 하다 보면 시간이 전부 지나고, 기회도 사라져 버리기 십상이거든요. 뒤늦게 결심하고 난 뒤에는 이미 늦어버렸을지도 모르고요.

‘아웃도어 스포츠 코리아’라는 회사를 운영하게 된 것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제가 처음 트레일러닝을 시작할 때만 해도 세계적으로 관련 시스 템이 존재하고 상품이 유통되는 데 반해 한국에는 시장이 존재하지 않았어요. 그렇다면 내가 해보면 어떨까 싶어 트레일 러닝을 대중적으로 확산할 수 있는 루트를 만들기로 결심했고, 결심이 서자 바로 실행에 옮겼어요. 말은 거창하게 했지만 반드시 원대한 목표가 있었던 건 아니에요. 그저 재미있으니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순수한 동기가 가장 컸어요. 해외 대회에 나가서 한국 깃발을 꽂고 오니 주변 사람들이 하나 둘 오지 레이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대회에 관한 이들의 소소한 궁금증부터 무엇을 입고 무엇을 신어야 할지까지 하나하나 다 알려주고 챙겨주게 되었죠. 제가 챙겨주는 사람들이 처음에는 한 명 두 명 그러다 어느새 스무 명을 훌쩍 넘겨 그 결과로 지금의 트레일 러닝 관련 업종 총괄 비즈니스에 이르게 된 것 같아요.

Q. 말씀하신 ‘트레일 러닝 관련 업종 총괄 비즈니스’에 대한 구체적인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현재 트레일 러닝뿐만 아니라 아웃도어 스포츠 전반을 아우르는 대회와 행사를 기획하고, 관련 용품들을 시장에 유통 및 판매하면서 업계 비즈니스적 측면에서 자문을 구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컨설팅도 하고 있어요. 한국 러닝 1.5세대이자 아마추어 분야에서의 트레일 러닝 마라 톤, 울트라마라톤의 산 역사이자 증인으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전부 하는 거죠. 1998년 무렵 한국에 트레일 러닝이 유행했는데, 당시 함께 했던 사람들 중 지금까지 관련 업계에 종사하거나 꾸준히 대회에 나가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아요. 저는 그중 살아남은 한 명입니다. 그렇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제가 가진 시장에 대한 철학 때문이 아니었을까 해요.

제가 비즈니스를 할 때 가장 중요시하는 키워드는 바로 ‘공유’입니다. 상품의 대중성은 타인과 공유할 때 자체적으로 파생되고 이로 인해 시장 도 성장하는 선순환의 구조를 갖게 되죠. 때마침 제가 일을 키우기 시작할 때는 2010년 무렵이었는데, 한국에 SNS가 점점 대중화되어가던 시기였어요. 저는 이 당시 SNS를 잘 활용하여 제가 가진 모든 정보를 공개하여 대중에 공유하면서 플랫폼을 견고히 구축해 갔어요. 그 결과 지금은 이 분야에 해박한 지식과 애정을 가진 마니아들과 함께하며 비즈니스로서의 자립력을 갖추게 된 것 같습니다. 지금도 이 분야의 전문가로서 아마추어 입문자들이 언젠가 숙련자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저의 가장 큰 역할이라 생각하고 있어요.

Q. 한국 트레일 러닝에서 문화기반의 시장 형성을 위해 오랜 시간을 투자해오셨는데, 그렇다면 유경험자로서 트레일 러닝 시장의 핵심은 무엇 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정답은 ‘사람’입니다. 트레일 러닝은 현장에 답이 있어요. 지지기반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현장에서 꾸준히 뛰면서 몸으로 증명할 사람들이 필요하죠. 이들이 곧 트레일 러닝의 문화 자체이기도 하고요. 시장은 문화와 접목시킬 때 점진적으로 균형을 이루며 성장할 수 있어요. 특히 프로보다는 아마추어들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스포츠 세계의 표면에 드러나는 사람들은 일등을 한 사람이지만, 이들을 빛내주는 조연이 없다면 일등도 아무런 의미를 가질 수 없죠.

어느 분야나 비슷하겠지만 오지 레이스를 해보면 가장 잘 뛰는 상위 5%에게는 이들만의 세계가 존재해요. 어마어마한 세계죠. 물론 이들도 대단하지만 정작 대회에서 가장 많은 박수와 환호를 받는 사람들은 가장 마지막에 들어오는 사람들이에요. 이유는 등수를 초월하여 여기 까지 온 것만으로 이미 승리자라는 문화와 인식이 분명하게 존재하기 때문이죠. 등수 매기기가 습관화되어 있는 한국 사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죠. 저는 이런 분위기를 지속적으로 환기하고자 해요. 그 예로, 대회에 출전하는 자들 못지않게 스태프들을 존중하는 자세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일하는 사람들이 자부심을 느껴야 시장이 유지되죠. 결국 트레일 러닝 시장 형성의 핵심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스태프들을 단순히 돈을 받고 일을 하는 사람들로만 생각하기보다는,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의 노력을 통해 전문가 집단으로 양성하려 노력하고 있어요. 이런 노력이 수반될 때 비로소 스태프들에 의해 고품질의 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여기에 투자를 아끼지 않습니다. 지금도 행사를 하면 적어도 예산의 30%는 인건비로 들어가는데, 이는 타 업체들과 비교해 봐도 꽤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건비에 투자하는 것이 곧 미래의 고객을 형성하고 파트너십을 도모하며 해당 종목에서 새로운 직업이 파생되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길이라고 믿고 있어요. 그래서 스태프로 참가하는 이들의 경험이 쌓이면 지속적으로 인건비를 올려주면서 이들에게 걸 맞은 역할을 주고자 해요. 이 모든 과정들을 마니아들과 함께 문화적인 집단을 만들고 시장을 형성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처음 제가 대회를 주최할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저와 함께 해온 스태프들은 이러한 저의 믿음을 증명하고 있어요. 대회를 준비하는 기간이 해가 갈수록 점점 짧아지고 있거든요. 사전답사 기간을 제외하면 2주 만에 모든 준비를 끝낼 때도 있죠. 이런 일들은 단순히 금전적인 보상만 잘해준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건 아니에요. 문화적 코드의 형성과 함께 개개인의 의식 성장이 수반되어야 가능하죠.

Q. 한국에 대회가 생기고 점점 발전해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해외 트레일 러닝 마니아들의 반응은 어땠을지 궁금해요.

한국에서 구색을 갖춘 트레일 러닝 국제 대회는 2015년에 시작되었어요. 물론 그전에도 있었지만, 문화와 접목된 새로운 형태의 트레일 러닝 대회가 시장과 함께 파생된 건 그때부터 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 대회를 오픈할 때 600명이 참가했는데, 그중 외국인만 200명이었어요. 상당히 큰 비중이죠. 세계 각지에서 유명한 선수들도 많이들 왔어요. 지금은 천오백명 정도 참가한다고 볼 때 외국인은 300명 정도가 참가하는 편이에요. 참가하는 외국인들의 비율이 비슷한데 상대적으로 국내 참가자들이 많이 늘어난 거죠. 제가 대회를 주최한다고 하면 해외에서도 많은 분들이 응원해주시고, 유명한 선수들이 많이들 참가 의사를 내비치고는 해요.

Q. 올해도 새로운 대회를 준비하고 계신다고 들었는데요.

K100 국제 트레일 러닝 대회를 준비 중이에요. 대회일은 10월 19일이며, 강원도 인제의 청정 자연을 달리는 코스입니다. 이번 대회의 코스는 소양강 주변 둘레길을 달리는데, 나무에서 내리는 총천연색 낙엽들이 여러분을 맞이할 거예요. 여름에는 한국형 정글을 뛸 수 있는 ‘정글 트레 일’을 주최했었고, 겨울에는 ‘화이트 트레일’이라는 타이틀로 눈 쌓인 자작나무 숲을 달릴 계획이에요. 정글 트레일이 여러분들에게는 조금 생소 할 수 있는데 참여해 보시면 정말 놀랄 거예요. 원시림이 눈앞에 펼쳐지거든요. 한국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으실걸요. 제 목표는 지금껏 보지 못한 인제의 사계절을 대회에 담아내는 거예요. 인제의 산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매번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 모습이 이루 말할 수 없을 만 큼 아름다워요. 산길을 달리며 인제의 자연을 즐기자는 취지인 만큼 일회성이 아닌 지역 축제로서 꾸준하게 자리 잡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Q. 그동안 참가하셨던 대회 중에서 특별히 인상 깊었던 대회가 있다면?

횟수로 따지면 트레일 러닝은 30번 이상, 마라톤까지 합하면 백번 이상을 참가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세보지도 않게 됐어요.

모든 대회가 인상 깊어요. 그리고 실은.. 모든 대회가 힘들어요(웃음). 물론 힘든 만큼 늘 재 미있고 새로워요. 특히 올해 5년 만에 간 고비 사막 대회에서는 정말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어요. 일화를 하나 말씀드리자면 저까지 세 명이서 함께 달렸는데, 홍콩에서 팀으로 출전한 세 분이 자꾸 저희를 견제하더라고요. 저희가 앞에서 뛰고 있으면 필사적으로 따라잡아 저희를 앞 서가기에 왜 저러지? 싶었지만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어요. 그렇게 계속 가던 중 혹시 한국에서 온 팀이 맞냐고 묻더라고요. 저희는 한국에서 온 건 맞는데, 함께 개인으로 출전한 동료들이고 팀으로 온 건 아니라고 대답했더니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어요. 저희가 한국에서 출전한 팀인 줄 알고 필사적으로 이기려고 했던 거래요.

(Photo by Thiago Diz/4 RacingThePlanet/Gobi March

인터뷰 전문은 레전드매거진 9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