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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GEND INTERVIEW] 무대가 전부인 뮤지컬 배우, 민영기

민영기는 1998년 오페라 <돈 조반니>로 데뷔했다.
본격적인 뮤지컬 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한양대학교 성악과 학사과정을 마치고 나서부터였다.
집안에 음악을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그저 우연한 계기로 노래를 시작해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이 시대의 뮤지컬 배우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은 탁월한 재능으로 인한 필연이 아니었을까.

그는 극장 지붕이 뚫릴 만큼 압도적인 성량 때문에
근엄한 카리스마를 뽐내야 하는 역할의 캐스팅을 할 때 일순위였다.
그런가 하면 2009년 뮤지컬 <삼총사>에서 만난
출연진들과 함께 팬들이 붙여준 애칭 ‘엄유민법’의 멤버로 공연장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한국 뮤지컬계의 대표 아이돌 그룹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의 외모는 아이돌이라는 별명과 무척 잘 어울린다.
미소 지을 때면 무대 위에서의 카리스마 넘치는 귀족이나
왕의 모습과는 정 반대의 장난기 많고 천진난만한 소년의 모습이 보인달까.

무대가 전부인 뮤지컬 배우
민영기

안녕하세요, 뮤지컬 배우 민영기입니다. 레전드매거진에서 인터뷰를 할 수 있게 되어서 기쁘고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Q1. 2019 엄유민법 콘서트 준비로 한창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계실 것 같아요.

엄유민법의 한국 최초 콘서트는 2016년에 개최되었어요. 그때부터 매년 한국 콘서트를 개최하고 있는데, 올해는 세종대학교 대양홀에서 10월 26일부터 27일까지 양일간 열려요. 저희가 엄유민법이라는 이름으로 발매하는 첫 정규앨범에 수록되는 곡들을 이날 콘서트에서 들려드릴 예정이에요. 그래서 요즘은 정규앨범 녹음과 공연 준비에 한창이며, 한편으로는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라는 작품에서 왕이 되고 싶은 야망에 가득 찬 오를레앙이 되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Q2. 엄유민법 멤버들은 눈빛만 봐도 통하는 사이 아닌가요? 워낙 돈독하다 보니 때로 멤버들 간에 의견 충돌도 발생할 것 같은데 그럴 때는 어떻게 극복하는 편인지.

저희가 처음 만난 건 10년 전이었어요. 뮤지컬 <삼총사> 작품에서 달타냥과 아토스, 포르토스, 아라미스 역할을 하며 가까워졌죠. 서로 사이가 틀 어질 정도로 의견 충돌이 있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가끔 저랑 법래가 단결하고 준상이 형 눈치 봐가면서 장난을 치는 정도랄까요. 제가 장난치는 걸 너무 좋아하거든요. 언젠가 제 장난이 심해지니 형이 참다못해다 따라오라고 해서 으슥한 주차장에 끌려갔어요. 그곳에서 뒷짐 지고 고개 푹 숙이고 이 나이에 기합 아닌 기합을 받은 적도 있어요(웃음) 주로 준상이 형이 뭔가 함께 하자고 말하고, 주관이 뚜렷한 기준이가 자기 의견을 열심히 이야기해요. 최종적으로 정해지는 것에 대해서는 다들 군말 없이 따라가는 편이고요. 준상이 형은 우리 가운데 큰 형님 역할로 늘 중심을 잡아 주고 계세요. 또 저희 이름 자체가 팬들이 붙여준 애칭이니까 멤버들 모두가 큰 사랑받는다 생각하고 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Q3. <마리 앙투아네트>의 오를레앙 역할에 몰입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계시나요?

다른 작품들을 할 때도 마찬가지인데, 뮤지컬 분야의 특성상 무대에서의 연기는 목소리와 노래의 비중이 70%를 차지하죠. 캐릭터의 성격과 특 성이 목소리로 표현되는 거예요.

18세기 프랑스혁명을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에서 오를레앙은 마리 앙투아네트를 왕비의 자리에서 끌어내리기 위해 왕비에 대한 추문들을 만들고, 거짓 소문을 퍼뜨려요. 겉으로 미소 지으면서 속으로는 표독스러운 야망가의 모습을 감추고 있죠. 훗날 왕가의 후예로서 프랑스의 왕위를 요구하고 프랑스혁명 이전 체제에서 정치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이기도 한데요, 혁명적인 성향의 오를레앙 공작을 표현하기 위해 강한 카리스마와 표독스러운 면을 목소리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어요. 노랫말을 통해 관객들에게 전해지는 뉘앙스와 감정 처리 하나하나에 그의 성격이 묻어나야 하죠. 그런 작업을 완성하고 나면, 표정과 제스처를 통해 나머지 30%를 채워서 캐릭터를 완성하게 돼요.

Q4. 데뷔 이례 21년째 거의 쉬지 않고 활동해 오셨어요. 민영기 배우님의 성량은 자타공인 대한민국에서 독보적이라고 할 만큼 뛰어난데요, 오랜 시간 동안 지치지 않고 목소리를 유지하면서 활동하실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요?

우선 활동을 오랫동안 쉬지 않고 할 수 있었던 건 쉽게 지치지 않는 타고 난 체력 덕분이고, 힘 있는 목소리는 성악을 전공하기 위해 입시를 준비하던 6개월 동안 단련한 결과예요. 당시 일주일에 한 번씩 선생님께 레슨을 받았는데, 개인 연습을 하는 날들은 노래를 다양한 방법으로 불러 보면서 내 목소리가 어떻게 달라지고, 내 몸은 어떤 반응을 하는지를 경험하는 시간이었어요. 그렇게 연습을 하고 다음 주에 레슨을 받으러 가서 선생님께 체크를 받으며 하루에 여섯 시간씩 6개월 동안 하루도 빼먹지 않고 노래를 하다 보니 목에서 피가 나기도 했죠.

어느 날인가 제가 공연을 앞두고 목 상태가 나빠져서 해외의 성악가들이 내한할 때 찾는다는 유명한 이비인후과에 내원을 했는데, 의사 선생님이 엑스레이로 촬영한 제 성대 사진을 보면서 말씀하시더라고요. ‘평소에 목이 잘 안 상하죠? 성대가 부딪히는 훈련을 너무 많이 해서, 성대가 센 소리를 내는 것에는 이골이 났어요.’라고. 아마 앞으로도 목소리가 잘 상하지는 않을 거지만, 상대적으로 발라드는 잘 못 부를 거래요. 왜냐하면 성대가 부드러워야 부드러운 소리가 나는데, 제 성대는 단단한 굳은살이 있어서 큰 소리와 센 소리를 내는 것에는 전문화되어 있지만 부드럽게 소리를 내는 데에는 상대적으로 약점이 있다고. 그런데 제가 20년간 피우던 담배를 7년 전에 끊었거든요. 그 뒤로는 예전보다 부드러운 소리를 내는 게 훨씬 수월해진 것 같아요. 앞으로 가끔 발라드 곡들도 들려드릴 기회가 있을 것 같아요. 이번 엄유민법 콘서트에서도 그런 시간을 마련했으니 기대하셔도 좋을 것 같네요.

Q5. 본격적으로 노래를 시작하신 것은 성악과 입시를 준비하면서부터였 나요? 그보다 앞서 학창 시절에도 경험이 있었는지, 어떤 계기로 음악을 시작하신 건지 궁금해요.

중학교 때 다니던 교회에서 친하게 지내던 선배들이 교내 합창단의 단원이었어요. 당시 고등학교에 입학하면 동아리를 의무적으로 반드시 한 개 가입해야 했는데, 교회 선배들이 다른 동아리에 가지 말고 우리와 함께 합창단을 하자고 했어요.

그런데 저희 집안에 음악 하는 사람도 없었고, 노래방이 지금처럼 흔할 때도 아니어서 노래를 부를 기회도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저는 제가 음치인 줄 알고 있었거든요. 합창단에 크게 관심은 없었지만 친한 선배들의 권유가 있었으니 활동해볼까 싶은 마음으로 고등학교 입학하고 오디션을 보러 갔어요. 아는 노래도 별로 없어서 음악시간에 배운 가곡을 대충 읊조렸는데, 결과는 불합격이었죠.

오디션에 떨어지고 제가 노래에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고 다른 동아리에 가려고 했는데, 합창단 선배들이 다시 한번 저를 찾아와 재 오디션을 치를 예정이니 한 번만 더 보라고 했어요. 이번에도 떨어질 것 같아서 안 가겠다고 거절했는데, 재 오디션 때는 떨어지지 않도록 선생님께도 잘 말씀드릴 테니 꼭 오라는 거예요. 내키지 않았지만 선배들의 권유대로 오디션을 보러 갔어요. 그런데 2차 오디션을 보러 간 그곳에는 지원자가 단 한 명도 오지 않았더라고요.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노래하기가 창피해서 대충하고 가려고 1차 오디션 때 했던 곡을 부르려고 하는데, 선생님께서 저를 쓱 보시더니 뭔가를 알겠다는 표정으로 웃으면서 자리에 앉으라고 하셨어요. 그렇게 들어간 고등학교 합창단이 저의 첫 번째 음악 활동이었습니다.

합창단 지도 선생님께서는 소리와 발성법에 대해 기본적인 것부터 알려주셨어요. 그때부터 노래하는 것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하루 일과 중 어떻게 하면 노래를 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기도 했어요. 고등학교 2학년이 되니 공부보다도 노래를 더 열심히 하고 있었죠. 연말 합창단 정기연주회 때 다섯 명을 뽑아 솔로 파트를 했는데, 제가 그 다섯 명 중 하나로 솔로를 하게 되었어요. 정기연주회를 보러 온 부모님께서는 제가 노래를 한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고, 정말 깜짝 놀라셨어요. 가문 최초로 노래하는 애가 나왔다고(웃음).

노래를 하는 건 무척이나 즐거웠지만, 앞날을 그려 보니 음악을 계속하면 먹고살기가 어려울 것 같았어요. 그래서 공부를 시작했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토목공학과에 입학했죠. 매일 쪽지시험을 치르고 학과 공부에 임하면서 바쁘게 시간을 보내던 중 가슴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하루라도 젊을 때 네가 정말 하고 싶은 걸 해봐야 하지 않겠니?’라고.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뭘까.. 돌아보니 고등학교 때 했던 합창단이 생각났어요. 친구들과 함께 무대에서 즐겁게 노래하고,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았던 그 시간들이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들이었죠. 그 길로 노래를 제대로 하기로 결심하고 대학교를 자퇴했어요.

인터뷰 전문은 레전드매거진 9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