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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GEND INTERVIEW] 가수 소향

소향은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CCM 가수이자, 밴드 포스(POS)의 보컬이다. <나는 가수다>, <불후의 명곡> 등의 방송 활동을 통해 국내 대중들에게도 많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최고의 가창력과 카리스마 넘치는 보컬로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세계 각국의 수많은 기획사들이 러브콜을 보냈지만, 그녀는 오랫동안 종교적 신념을 지키며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월드클래스 디바

가수 소향

레전드매거진 구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이렇게 멋진 매거진에 초청받아 인터뷰하게 되어서 너무 영광스럽습니다.

방송 그 후

Q. 대중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지게 된 계기는 공중파 음악프로그램들을 통해서였잖아요. 그 이후의 이야기가 궁금했어요. 방송 출연이 가져온 변화가 있었나요?

많은 사람들에게 저의 이름과 얼굴을 알리는 계기이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보다도 음악인생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였어요. <나는 가수다>, <불후의 명곡>, <복면가왕> 이렇게 세 가지 프로그램은 저에게 가수로서 나아가야 할 길을 알려준 학교나 다름없어요.

<나는 가수다>를 하기 전에는 대중가요를 부를 일이 거의 없었어요. 그래서 처음에 방송에 임할 때는 적응이 잘 안됐던 것 같아요.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건지에 대한 확신도 서지 않았어요. 누군가 제가 가요를 부르는 걸 들으시더니 노래를 기술적으로는 잘하지만, 가슴에 크게 와 닿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었는데 프로그램을 하다 보니 그 말이 이해됐어요. 대중가요를 오랫동안 해오신 선배님들의 노래를 가까이서 듣고 있자니 거기서 전해지는 심금을 울리는 감성이 있는 거예요. 애드리브 하나에도 그들이 노래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담겨있었죠. 좋은 무대들을 보고 들으면서 제가 가요를 어떻게 부를지에 대해서도 연구하게 되었어요.

가수가 단지 음정과 박자를 정확하게 지켜 노래를 부른다고 해서 듣는 이가 감동하리라는 법은 없거든요. 음정이 흔들리더라도 사람의 가슴을 울리는 노래가 있어요. 프로그램을 하면서, 저도 그런 걸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어요. 나가수를 통해 대중가요 보컬로서의 큰 맥락을 짚게 되었던 것 같아요.

<불후의 명곡>을 하면서는 테크닉적으로 호흡을 조절하는 방법을 배웠어요. 소절 한마디 한마디를 넘길 때, 어떤 부분에서 흉성을 사용할지 혹은 어떤 부분에서 두성을 사용할지 이런 계산들을 철저하게 했어요. 특히 ‘Leon on me’는 저에게 연구대상이었어요. 마디마디를 끊어서 녹음을 반복하며 음들이 내 몸을 통해 어떻게 흘러나오는지를 계속해서 시뮬레이션했어요. 테크닉적으로 그렇게까지 치밀하게 구사해볼 수 있는 기회는 아마 앞으로도 많이 없을 것 같아요. 경쟁 프로그램이니까 가능했던 거죠.

<복면가왕>은 불후의 명곡이나 나가수에 비해 준비 시간이 타이트해서 편곡적인 부분보다는 오로지 보컬로 진검승부를 해야 했어요. 가사 하나하나에 담겨있는 감정들까지 세심하게 연구해 이를 제 안에 전부 흡입했다가 한꺼번에 분출해 보여주는 게 관건이었죠.

방송을 하는 과정들은 재미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힘들어서 많이 울기도 했어요. 본래 제 성향이 완벽주의자라서 연습을 대충 끝낼 수가 없었어요. <불 후의 명곡> 할 때 한 번은 백보컬까지 제가 직접 어레인지 하면서 밤새 녹음을 했어요.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싶어 주저앉아 울다가도 일어나서 다시 녹음을 했어요. 어쨌든 결과물은 정말 좋게 나왔어요. 가족들에게 1등 하기 너무 힘들다고 투정을 부리기도 했는데, (웃음) 남편이 제가 힘들 때 곁에서 늘 도와주고 힘이 되어 줬어요. 이렇게 세 가지 프로그램을 마치고 나니 그제야 아 내가 노래를 조금 하는구나. 싶더라고요.

Q. <불후의 명곡>에서의 ‘Leon on me’는 원작자인 마이클 볼튼에게 거장 수준이라는 극찬과 함께 기립 박수를 받으며 영예의 우승을 남긴 전설의 무대였어요. 보면서 저도 말문을 잃을 만큼 크게 감동했는데, 어떻게 이런 무대가 가능했던 건가요?

‘Leon on me’는 저의 모든 것을 담아낸 무대예요. 저의 욕망, 저의 철학, 제가 가진 에너지까지 모든 것을 100% 쏟아부었죠. 제 음악 스타일은 무엇이고, 앞으로 어떤 스타일로 노래할지에 대한 확실한 노선을 정해준 무대였어요. 구성 자체도 독특하고 다이내믹했죠. 저에게 새로운 시도였고, 관객 반응도 좋았어요. 무엇보다도 그 무대를 하면서 저 스스로가 너무 재미있었어요. 저는 제가 재미를 느껴야 하고, 남들이 좋아하는 건 그다음이라 생각해요. 그 무대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거예요.

Q. KBS <열린음악회>와 깊은 인연이 있으시다고 들었어요.

<열린음악회>는 저에게 가족 같은 프로그램이에요. 요즘도 이따금씩 출연하고 있지요. 오래전 아무도 저를 모르던 무명시절부터 제게 연락을 주셨어요. 돌아보면 피디님이 당시 정말 어려운 결정을 하신 거예요.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유튜브나 SNS가 발달되거나 케이블 방송도 많지 않아 공중파 출연 기회가 무명가수, 특히나 기독교 가수에게 쉽사리 오지 않았거든요. 작가들이 출연진을 정하고 피디님에게 승인이 나면 국장님 사인까지 받아야 출연이 확정되는데, 당시 예능 국장님은 어디서 왔는지 어떤 노래를 하는지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 이름이 출연진 명단에 쓰여있으니 낙하산 아니냐는 반응이었겠죠. 그랬는데 작가가 딱 한곡만 들어보고 판단하라고 설득해서, 처음으로 한 곡을 불렀어요. 얼마 뒤 관계자로부터 연락을 받았어요. 앞으로도 시간 날 때 한 번씩 방송에 출연해달라고. 그렇게 햇수로 20여 년째 이따금씩 출연진으로 함께하고 있어요.

Q. 2012년 <올스타전>에서 부른 소향님의 애국가는 뛰어난 가창력으로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큰 화제가 되었어요.

언젠가 해외의 유명 디바들이 미국 국가를 부를 때 자기 스타일대로 해석해 독특하게 부르는 걸 보면서, 저도 애국가를 그렇게 불러보고 싶다고 생각했었어요. 당시 <올스타전>에서 애국가를 지금까지 아무도 해보지 않은 방식으로 불렀는데, 그게 그렇게 까지 이슈가 될 줄 몰랐어요. 처음에는 안 좋은 댓글들도 달렸었어요. 어떻게 감히 신성한 애국가를 그렇게 부르냐는 반응이 있었는데, 나중에는 많이들 좋아해 주셨어요. 당시에는 올스타전이기 때문에 조금 더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바리에이션을 한 것도 있는데, 조금 더 격식 있는 국가 행사에 초대되어 애국가를 할 때는 원곡에 충실하게 부르려고 하는 편이에요.

Q. 유명 클래식 음악가들과도 종종 협연을 하시는데, 최근에 기억에 남는 경험이 있었나요?

그동안 클래식 음악가들과 작업을 많이 해왔어요. 오케스트라 하는 분들이 저를 좋아해 주셔서 간간히 협연도 하고, 조수미 선생님과도 함께 한 적이 있어요. 최근에는 LA에 위치한 디즈니 홀에서 오케스트라 협연을 하고 왔어요. 한인 단체에서 주최한 자선 공연이었는데, 객석에는 외국인이 절반이고 나머지 절반은 한국인이었어요. 유명한 가스펠 싱어와 함께 공연을 했죠. 예전에 조수미 선생님 초청으로 콘서트를 보러 그곳에 가본 적은 있는데, 무대에 서서 노래를 한 건 처음이었어요. 클래식 음악가들과 협연을 하면 대중음악으로 무대에 설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에요. 아무튼 정말 재미있는 경험이었어요.

함께 걷는 사람, 가족

Q. 시아버님께서 20여 년 이상 매니저 역할을 하고 계신데, 정말 남다른 인연인 것 같아요.

아버님은 목사님이에요. 아버님의 선교 방식은 조금 독특한데, 음악과 노래가 가진 힘을 믿고 계세요. < 포스>라는 팀을 시작할 때 이왕이면 좋은 악기를 사용 하라며 가장 좋은 악기를 사주셨어요. 나중에는 목회를 내려놓으시고 저희 팀의 음악활동을 돕는 것에 전념하셨어요. 저희를 아무도 모를 때에도 무작정 거리로 나가 음향을 틀면서 함께 고생했어요. 아마 제가 그 어떤 유명한 기획사에 소속이 된다고 할 지라도 이 정도로 마음이 맞는 사람과는 평생 함께 할 수 없을 거예요. 또 늘 저를 친딸처럼 대해주세요. 세상에 어떤 시아버지가 며느리 공연한다고 물 갖다 주고, 옆에서 짐을 들어주겠어요. (웃음) 아버님 저 때문에 고생 많이 하셨어요. 게다가 저는 늘 아버님이 옆에 계시니까 험난한 연예계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만 하지 실제로는 전혀 겪어 본 적이 없어요. 아버님이 항상 옆에 계신데 누가 저에게 함부로 할 수 있겠어요. 항상 든든한 존재예요.

해외 유명 프로듀서나 기획사들로부터 러브콜도 많이 받았어요. 하지만 수락하지 않았죠. 저랑 같이 <포스>라는 팀을 했던 제 시누이가 멤버가 지금 라는 팀에서 기타를 연주하고 있어요. DNCE는 <조나스 브라더스>의 조 조나스가 만든 팀인데, ‘Cake By The Ocean’라는 노래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투어를 시작했어요. 제가 그 친구 공연하러 다니는 걸 옆에서 지켜보니 내가 이렇게 다니면 죽겠다 싶을 정도로 스케줄이 빡빡하더라고요. 일 년 중에서 300일을 공연을 해요. 영국에 갔다가 바로 다음날 동남아에 갔다가, 그다음 날은 일본으로 갔다가. 그 팀의 메인 보컬인 조는 어떻게 그렇게 노래를 하면서 목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지 신기하기까지 했어요. 그런데 실은 미국의 기획사 소속 뮤지션들이 대부분 그렇게 활동을 해요. 심지어 <조나스 브라더스>는 LA에서 공연을 하고, 다음 날 아침 뉴욕에서 공중파 방송을 하고, 다섯 시간을 연달아 왔다 갔다 하면서 그날 저녁에는 또 다른 곳에서 공연을 한대요. 당연한 일상인 거죠.

아무리 제게 개인 비행기가 있고, 또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다고 한들, 그렇게 살아가는 건 너무 힘들 것 같더라고요. 계약을 하고 나면 그들이 원하는 바가 있을텐데, 제가 원하는 대로 제 몸 상태와 제 요구사항을 다 맞춰 주면서 활동을 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그런데 아버님은 제가 원하는 대로 다 해주세요. 지금까지 이렇게 해왔으니, 앞으로도 남들이 가는 똑같은 길로 가기보다는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다른 길로 걸어가며 음악을 하는 게 더욱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빛나는 추억들

작년에 데이비드 포스터, 브라이언 맥나이트와 일본 도쿄 블루노트에서 열린 블루노트 30주년 기념 공연에 함께 했어요. 나중에야 들었는데, 데이비드 포스터가 저를 만나고 싶어서 며칠간 어렵사리 수소문을 했었대요. 제가 홈페이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SNS도 안 하니까 저와 연락하려면 아버님을 통해서만 가능하니 연락이 쉽지 않았던 거죠.

생각해보면 정말 많은 공연을 했어요. 스피커가 찢어진 시설에서도 공연을 했고, 군부대 무대에도 올랐죠. 그런데 전 세계 수십 개국을 돌아다녀봐도, 관중이 정말 많고 시설이 좋은 곳을 가봐도 100명도 채 안 되는 관객들 앞에서 노래한 경험이 더욱 인상 깊게 남을 때가 많았어요. 작은 공간에서 관객들과 일일이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 나누며 마음 편히 노래한 그 시간들은 모두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한 번은 뉴욕에서 여행을 하다가 친구들에게 버스킹을 해보고 싶다고 했더니, 그럼 한국에 돌아가기 전에 한번 해보라고 권유하길래 아무런 장비도 없이 지하철 플랫폼에 털썩 걸터앉아 오밤중에 노래를 했어요. 그런데 누가 와서 1달러를 툭 주더라고요. (웃음) 그 밤의 분위기와 공기는 지금도 늘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언젠가 다시 그곳에서 버스킹을 하고 싶어요.

폐허로 변해버린 아이티에서 노래를 했던 것도 기억에 남아요. 아이티에는 사람들이 쓰레기를 많이 버려서 냄새가 나고 파리떼가 들끓는 마을이 있어요. 어떤 분이 그곳에 교회를 세우셨는데, 그 교회에 모인 마을 주민들 앞에서 노래를 했어요. 몸에는 때가 묻었지만, 영혼은 결코 때 묻지 않은 맑은 영혼들이 제 앞에서 저를 바라보고 있었죠. 이렇게 아프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노래를 해 줄 수 있어 다행이다. 앞으로 어디를 가건 지금 같은 마음으로 노래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얼마 전에는 네팔에서 스무 명의 아이들과 선교사님이 저를 찾아왔어요. 그 아이들은 <포스> 3집 앨범 수록곡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라는 곡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고 잠들기 전에도 그 노래로 하루를 마무리하는데, 매일같이 제 목소리를 듣다 보니 아이들이 저를 직접 보고 싶어 했었대요. 그렇게 아이들이 찾아왔는데, 이번에는 제가 아니라 그 아이들이 저에게 그 노래를 불러줬어요. 한국어 가사인데 전부 다 외우고 있더라고요. 울컥했어요. 노래가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이는지, 또 한 번 느낄 수 있었어요.

작가 소향

Q. 최근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SNS를 많이들 하잖아요. 그런데 소향님은 SNS를 안 하시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단순한 이유인데, 혹시 말실수를 할까 봐서요. 제가 수다 떠는 걸 너무 좋아하거든요. 한마디 말실수로 인해 그동안 쌓아온 모든 게 한 번에 무너지는 연예인들을 종종 보면서 나는 저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원래 하고 있던 페이스북을 접었어요. 그런데 페이스북을 안 하니 시간이 많이 남았어요. 제가 그동안 SNS에 빠져 남의 시선에 마음을 많이 쓰며 쓸데없는 시간을 많이 보내왔던 걸 알게 되었죠.

또, 철없을 때 경솔하게 써 올린 글들이 시간이 지나고 다시 보면 얼마나 큰 후회로 남겠어요. 대신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 대해서 여러 번 신중하게 생각하고, 사람들과 그 주제로 충분히 이야기를 나눈 뒤 정제된 언어로 담아내 책으로 출간하고 있어요.

Q. <아낙 사이온>, <크리스털 캐슬>등 장편소설을 비롯하여 최근에는 에세이 <사랑, 그 완벽한 알고리 즘에 대하여>를 집필하셨어요. 가수뿐만 아니라 작가로서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계시더라고요.

20년 전부터 기독교 성경책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요한계시록에 흥미를 느꼈고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용, 적그리스도 같은 소재들을 엮어서 판타지 소설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를 머릿속으로 어렴풋이 생각하곤 했어요. 처음부터 소설을 쓰기로 결심을 하고 시작했던 건 아니었어요. 평소에 머릿속으로 했던 생각들 중 첫 문장을 커피숍에서 무심코 노트북에 끄적였어요. 그러다 캐릭터들을 하나씩 끄집어내며 분량을 늘려갔고, <크리스털 캐슬>이라는 8권의 장편 소설로 완성되었어요. <아낙 사이온>은 그 후 e-북 출판업계에 종사하시는 분을 통해 소개받은 판타지 장르 유명 작가님 두 분을 코칭을 받으며 완성했어요. 그분들의 도움으로 성경이라는 서사적 배경에 대해 잘 모르더라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판타지 소설로 완성되었죠. 책을 쓰는 과정은 정말 힘들었어요. 천 이백장을 썼다가 지우기도 했고, 4권까지 썼던 걸 전부 다 지우고 처음부터 다시 쓰기도 했어요.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보는 성격이다 보니 장편소설을 하면서 체력이 완전히 바닥났어요. 그때는 아침에 커피 한잔을 들고나가 새벽까지 글만 계속 썼어요. 체력을 쥐어짜며 글을 쓰다 보니 힘들었지만, 그래도 정말 재미있게 썼어요.

최근 출간한 에세이 <사랑, 그 완벽한 알고리즘에 대 하여>는 하나님의 사랑을 찾아가는 신앙고백적 에세이예요. 성경에 선악과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저는 늘 왜 하나님이 선악과를 만들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 선악과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성경에 등장하는 역사적이고 중요한 사건들을 순차적으로 스토리 텔링 하면서 제가 그동안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보고 들었던 하나님의 이야기를 엮어 제 생각을 담아냈어요.

제 삶의 마지막 목표 중 하나가 있는데, 제가 쓴 소설을 영화화하는 거예요. 죽기 전에 꼭 할 테니 언젠가 영화가 나오면 레전드매거진에서 꼭 기사로 내주세요!

가수 소향

Q. 대중가수와 CCM 가수 사이에서 본인만의 색을 확실히 보여주는 것에 대해 힘든 점은 없었나요? 있었다면 어떤 점이 가장 어려웠나요?

CCM만 하다가 대중가요를 부르려니 익숙하지 않아서 어려웠어요. 다들 저를 크리스천 가수로, 가스펠을 하는 가수로 알고 계시잖아요. 그래서일까요? 제가 가요를 부르면 가스펠처럼 들린다는 분들도 많아요. 의도한 것은 아닌데, 가요이면서도 가스펠 같기도 한 중간 어디쯤에 있는 저만의 음악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 같아요.

어느 날인가 <복면가왕> 피디님께서 제 노래를 듣고 나니 성령이 임한다는 게 뭔지 알 것 같다고 말씀 하셨어요. 실은 패널들에게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뒤였죠. 소향 씨가 노래를 하면 하늘의 문이 열리는 것 같다고.

<나는 가수다>에 한창 출연 중일 때 참여한 회식 자리에서 많은 이야기들을 들었어요. 술잔이 한두 잔 기울면서 사람들이 자신의 속에 있던 진실한 이야기 들을 하나 둘 꺼내놓는데, 듣다 보니 너무나 마음이 아팠어요. 세상에 이렇게 힘들고 아픈 사람들이 많았구나.. 몇십억씩 빚을 지고, 대출을 받고, 사채업자에게 속고 그런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그들이 왜 술을 마시는지 이해할 수 있었어요. 예전에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들을 보며 그들에 대해 함부로 판단했던 게 후회가 되었죠. 교회에 가서 그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저는 제가 교회와 세상의 중간에 있다고 느꼈어요. 제 음악도 이런 깨달음과 같은 맥락으로 흘러갔던 것 같아요. 질문에 대한 답변이 되었나요?

Q. 소향님이 생각하는 ‘가수’란 어떤 존재인가요? 또, 노래할 때는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지요.

가수는 어마어마한 무기를 가진 사람이에요. 가수가 우울한 마음을 품고 노래하면 듣는 사람도 비슷한걸 느껴요. 반면 희망의 마음으로 노래를 하면 정말 신기하게도 듣는 사람들도 희망을 갖게 돼요. 신기한 일화가 있는데, 저와 관련된 유튜브 콘텐츠 중 제 노래에 대한 리액션 비디오가 하루에도 수십 개씩 올라오거든요. 가끔 보곤 하는데, 한 번은 ‘홀로 아리랑’이라는 곡에 대한 외국인들의 리액션 비디오를 봤어요. 너무 신기하게도 그 노래를 할 때 제가 가졌던 마음을 외국어로 똑같이 이야기하더라고요. 한국어도 잘 모르고, 노래 가사도 정확히 이해하기 어려울 텐데도 제가 노래를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그들에게 전달되었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또 한 번은 미국의 팬클럽 회장이 각국에서 팬들이 보낸 편지를 저에게 주셨어요. 독일, 프랑스, 미국, 뉴욕, 베트남, 필리핀, 방콕 등 수많은 국가에서 온 편지 중 하나에 “당신은 희망을 이야기하는 사람입니다. 당신의 노래가 저를 살렸어요. 죽고 싶을 때, 당신의 노래로 인해 다시 희망을 가질 수 있었어요”라는 글이 적혀있었어요. 그동안 제 삶에 대해 한국어로 이야기한 적은 있어도 영어로 이야기한 적은 없는데, 사람들이 음악을 듣고 제가 전하고자 했던 마음을 느꼈다는 게 참 신기했어요. 연주자가 어떤 마음으로 연주를 하느냐에 따라 듣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걸 그때 알았어요. 많은 음악인들이 이를 인지하셨으면 해요. 우리는 무서운 무기를 가진 사람들이에요. 총을 쏠 수도 있고, 테러를 만들수도 있고, 누군가를 살릴 수도 있어요. 그게 바로 영혼의 언어인 음악의 힘이죠. 그래서 저는 되도록이면 좋은 마음으로 노래를 하려고 노력해요. 훗날 뒤돌아 봤을 때, 돈을 많이 벌고 유명해지는 것 보다도 진정 가치 있는 삶은 사람들을 사랑하게 만들고, 희망을 품게 만들고, 꿈을 꾸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살아간다면 죽을 때가 되어서 생을 돌아봤을 때 후회가 남지 않을 거예요. 그렇게 사는게 정말 잘 사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저의 노래를 듣는 모든 분들이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

Q. 본인이 생각하는 가창력의 비결은 무엇인가요?

노력도 중요하지만, 재능이 있어야 해요. 가수는 몸이 악기잖아요. 성대와 얼굴의 구조, 공명이 나오는 구조 등은 전적으로 타고나는 하나님의 선물이에요. 실은 이런 질문을 받을 때면 타고나는 거라는 대답을 피해 갈 수가 없어요. (웃음) 물론 후천적인 노력도 중요하죠. 훌륭한 스승을 만나 많은 걸 배울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죠. 저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보컬 코치들을 만나서 쉴 새 없이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었어요. 그렇게 배운 것을 계속 적용해보면서 연습했죠. 안정적으로 노래를 잘하게 되기까지 수많은 연습과 경험이 있었어요.

인터뷰 전문은 레전드매거진 9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