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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GEND INTERVIEW] 가수 최백호

한국을 대표하는 가수이자 싱어송라이터인 최백호는 1977년에 데뷔한 원로 중의 원로이다.
총 17장의 정규 앨범을 발매하였으며 현재도 무대에서 많은 공연을 소화하며 현역으로 활동 중이다.
최근 일흔을 기념하는 정규앨범 7(seven)을 발매하여 많은 무대를 이어나가고 있으며,
대중들의 사랑이 계속되는 한 그의 활동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의 생을 노래하는 낭만가객

가수 최백호

드디어 모셨습니다! 저희 레전드매거진의 취지에 가장 부합하시는 분이 아닐까 하는데요, 반갑습니다 최백호 선생님.

안녕하세요, 최백호입니다. 전 그저 조금 오래 활동한 가수일 뿐인데, 이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는 한국음악발전소에서 소장을 맡았었고 현재는 서울 음악창작소 뮤지스땅스에서 대장을 맡고 있습니다. 그리고 본업인 가수로서 꾸준한 창작 활동과 공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어떤 성장 과정을 거치신 건지, 지금의 최백호가 있기까지 어떤 일들이 영향을 주었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어린 시절엔 가수에 대한 꿈이 전혀 없었어요. 어릴 때는 화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가수? 노래? 정말 꿈도 꾸지 않았죠. 중학교 음악 시간에 선생님 몰래 그림을 그렸을 정도로 음악에는 전혀 취미가 없었습니다. 그림 그리다 가끔 걸려서 혼나기도 했고요. (웃음) 나중에 기타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음악에 조금 관심을 가지게 됐지만, 기타를 칠 때도 노래를 할 생각은 전혀 없었고 연주에 집중했었습니다. 어릴 때는 화가가 되고 싶다는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죠.

저희 어머니와 누님 모두 교편생활을 하셨어요. 저도 자연스레 시골의 미술 선생님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요. 그러던 중, 운명의 회오리에 휩쓸리게 되면서 제 인생이 완전히 바뀌게 되었습니다. 미대 입시를 위해 공부 중이었는데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전 편모 가정이었는데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나니 어떻게 해야 할지 너무 혼란스러웠어요.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군 입대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군대에서도 1년 만에 결핵을 앓아서 제대를 했어요.

제대를 하고 사회에 나오니 생계를 꾸릴 방법이 없더라고요.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가 굉장히 아끼며 키워왔던 터라 생활력이 없었어요. 친구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생계를 이어가다 우연한 기회에 노래를 시작 했어요. 친구의 매형이 라이브 클럽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제게 일 해보지 않겠냐고 권유를 하신거죠. 그렇게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다 또 우연히 하수영 씨를 만나게 되어 서울로 상경했고 데뷔 곡 <내 마음 갈 곳 잃어>의 성공을 시작으로 가수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운명의 회오리라는 말이 생각나네요… 선생님이 걸어오신 삶이 자연스레 노래에 묻어 나오는 것 같아요.

전 보통 가사를 먼저 쓰고 그 가사에 맞는 멜로디를 붙이는 편인데,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보니 감정도 다양하고 변화가 많죠. 가사에 따라 트로트가 나오기도 발라드가 되기도 해요.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하고 싶습니다.

거창하게 작곡이라 얘기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클럽에서 노래를 할 때부터 작곡 연습을 했던 거 같아요. 사실 그때는 무대에 올라가 노래를 해도 되는 수준인지 아닌지도 잘 몰랐어요. 그냥 무대를 소화해야 하니까 연습을 했던 거죠. 그런데 모방은 창작의 어머니라고 송창식 선배나 이장희 씨 곡을 흉내 내고 연습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저만의 곡이 만들어졌던 거 같아요. 그때의 경험들이 지금의 최백호를 만드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올해 칠순 기념 앨범 7[seven]의 대부분 곡을 작사, 작곡하셨잖아요, 특히 애착이 가는 곡이 있을까요?

<동생아>라는 노래가 가장 애착이 가요. 서있는 곳이 바뀌면 풍경이 달라진다고, 제 나이 70이 되어보니 시선이 달라진 거 같아요. 60대의 제 가 올려보던 형님들의 위치에 직접 서게 되니 책임감도 더 강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어디 가서 말이나 행동도 더 조심하게 됐어요.

제가 60대 때 했던 고민들이 제 나이 70이 되어보니 아무것도 아닌 것들도 많았어요. 그래서 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노래가 <동 생아>라는 노래입니다. 동생들의 고민을 덜어주고 싶었어요. ‘꽃이 졌다고 울지 마라, 너무 걱정하지 말아라, 하고 싶은 일을 해라, 살아있는 게 최고다’ 가사에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았어요.

많은 후배를 두신 원로 가수다운 대답인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인생을 돌아봤을 때 가수가 되길 잘했고 느낀 순간은 언제일까요?

다른 분이라면 멋진 대답을 하셨을 텐데, 저는 무대에서 노래할 때 항상 아쉬운 점이 많았어요. 내가 내고자 하는 소리에 항상 미치지 못했어요. 오히려 점점 나이를 먹으며 나아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언제냐고 물어보면 지금이라고 답하고 싶습니다. 어릴 땐 아무것도 몰랐는데, 많은 무대를 경험하고 연륜이 쌓일수록 목소리를 내는 방법이나 감정을 전달하는 법을 이해하고 점점 나만의 목소리가 완성되어가고 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젊을 때 보다 지금이 더 만족스러워요.

미술 작가로도 활동 중이시잖아요. 작품에서 느껴지는 공통된 정서가 쓸쓸함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제게 어떤 작품관이 있다기보단 그게 그냥 나의 본성 같아요. 부유하지 못한 환경에서 자라왔고, 어머님이 전근이 잦아 전학을 자주 다녔어요. 오래 사귄 친구가 없다 보니 어울리거나 정착하지 못하고 혼자 놀곤 했어요. 그런 경험들이 자연스레 작품에 묻어 나오는 거 같아요. 노래도 마찬가지인데 밝고 경쾌한 분위기는 저하고 좀 안 어울리는 거 같습니다. 슬프고 침울한 분위기가 제게 더 와 닿네요.

인생의 경험이 자연스럽게 묻어 나오는 것이라 볼 수 있겠네요. 성격은 어떤 편 이신가요?

제 성격이 낙천적인 편은 아니에요. 다만 객관적인 면이 있어요. 그래서 상처를 잘 안 받는 거 같고요. 이미 지나간 일, 사라진 물건, 지나간 사람에 대한 미련이 없는 편이에요. 돈이나 정성이 많이 들어간 일이라도 객관적으로 봤을 때 아니다 싶으면 깔끔하게 접어버려요. 가끔 제 자신도 놀랄 정도로요. 미련과 후회가 남는다고 매달리면 더 상처를 받는다고 생각해요. 남들이 보기엔 강해 보일 수도 있는데, 좋게 말하면 욕심이 없는 거고 나쁘게 말하면 너무 건조한 걸지도 모르겠네요.

그렇다면 선생님께 힘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제 가족이요. 결혼한 제 아내는 와이프이자 동시에 애청자 1호인데, 음악을 하고 악기를 다루어서 음악에 대한 이해도가 있어요. 성격도 저랑 닮아서 비평적인데 점수를 짜게 줍니다. (웃음) 제가 젊었을 때는 공연 때문에 아내와 함께 할 시간을 많이 갖지 못하였어요. 그래서 지금 아내와 함께 하는 시간이 소중하고 행복합니다. 그리고 제 딸과 손자와 함께 보내는 시간도 소중해요. 소소하지만 정말 큰 행복입니다.

후배 뮤지션들에게 함께 작업하고 싶은 선배로 손꼽히고 계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저도 후배와 함께 하는 무대를 좋아합니다. 기회가 닿는 한 많은 무대에 서고 싶어요. 후배들이 절 좋아하는 이유라 한다면… 제가 싱글 아티스트다 보니 복잡한 과정 없이 저만 좋다고 하면 바로 무대에 설 수 있으니까 그런 것이 아닐까요? (웃음)

제 나이가 많으니 노인의 역할, 노인의 목소리가 필요한 상황에서 절 찾아주는 거 같아요. 아이유와 함께 한 <아이야 나랑 걷자>라는 노래가 있는데 내용을 들여다보면 어린아이에게 노인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들려줘요. 스웨덴 세탁소와 함께한 <두 손, 너에게>라는 곡에서도 제가 노인의 목소리로 참여했어요. 앞으로도 후배들이 저를 필요로 하고 제 목소리가 도움이 된다면 얼마든지 함께 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트로트 색이 굉장히 짙은 노래를 계획하고 있어요. 세련되고 빠른 템포의 요즘 트로트 말고 정말 느리고 애절한 감정의 짝사랑 이야기를 담은 노래요. 언제라고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공개할 수 있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뮤지스땅스에서 대장을 맡고 계십니다. 뮤지스땅스에 대해 소개를 부탁드려요.

마포구에 위치한 레코딩 스튜디오 겸 작업실과 공연장과 연습실로 이루어진 장소로 문화 관광부와 서울 음악창작소가 함께 참여한 인디밴드들을 위한 공간이에요. 뮤지스땅스의 장점으로 굉장히 좋은 시설을 들 수 있습니다. 장비 선정부터 설계까지 저희가 했기 때문에 인디 밴드들의 만족도가 높습니다.

저희는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그중 ‘2019 무소속 프로젝트’라고 소속이 없는 친구들 모아서 진행하는 경연대회가 있어요. 작년까지 한 400팀 가까이 지원서가 접수되었고, 올해는 많이 늘어나서 700팀이 지원을 했어요. 최근 인디 밴드들의 상황이 굉장히 어려워요. 홍대 주변 클럽들이 거의 다 문을 닫아 공연을 할 수 있는 무대가 많이 사라진 데다 어디 가서 공연을 해도 5만 원 받으면 잘 받은 편이에요. 그래서 전부 아르바이트하면서 음악을 하고 있는데, 이마저도 무대가 점점 줄어들고 있어요. 저희도 이런 상황을 바꾸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운영에 있어 어려운 점이라면 정부 산하 기관이다 보니 매년 예산을 받아야 한다는 점이에요. 필요한 예산은 많은데 정부에선 자꾸 줄이려고 하니 조율하는 데에 애를 먹고 있지만 잘해나가고 있어요. 그리고 저는 이제 나이가 들어서인지 젊은 친구들과 대화가 쉽지 않다 보니 젊은 후임자를 찾고 있어요. 책임감 있는 사람이 나와서 맡아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레전드매거진을 통해 후임자가 나타나 뮤지스땅스를 잘 이끌어주길 바라겠습니다. 선생님은 우리 삶에 음악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세요?

음악은 인간이 창조할 수 있는 그 어떤 창작물보다 독특하고 아름다운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문학은 언어를 매개로 하기 때문에 문자를 모른다면 이해할 수 없고, 그림은 캔버스가 필요한 공간에 종속된 예술이라면, 음악은 유일하게…

인터뷰 전문은 레전드매거진 9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