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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GEND INTERVIEW] 김중도, 앙드레김 아뜰리에

[앙드레김]

앙드레김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패션 디자이너의 이름을 넘어 이제는 하나의 국가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최경자의 ‘국제 복장학원’을 수료한 앙드레김은 1962년 소공동에 ‘살롱 앙드레’를 오픈하며 정식 디자이너로 데뷔했다.

1966년에는 프랑스 파리에서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패션쇼를 여는 등 다양한 활동을 시작하며 한국을 넘어 세계 무대에서 이름을 널리 알린 한국 최초의 남성 패션 디자이너가 되었다. 영화배우 신성일·엄앵란의 결혼 예복과 드레스를 만들어 대중들 사이에 그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 후 스타가 되려면 앙드레김의 패션쇼에 서야 한다는 얘기가 돌만큼 대한민국 스타 마케팅을 정점에 서게 되었다.

1980년 미스유니버스 대회의 주 디자이너가 되었으며,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는 대한민국 대표팀의 선수복을 디자인하기도 했다. 1997년에는 문화훈장 화관장(5등급)을 수상하였으며, 2000년 프랑스 예술문학 훈장을 받은 데 이어 2008년 문화훈장 보관장(3등급)으로 훈위가 승급됐다.

2010년 앙드레김이 세상을 떠나고 이제 그의 아들 김중도 대표가 앙드레김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백의민족’<白衣民族>의 혼을 담은 하얀 바탕에 정성스럽게 한 올 한 올 새겨낸 금색 문양이 상징인 ‘앙드레김’은 이제 한국을 넘어 세계 무대에 서기 위해 힘찬 재도약의 출발선에 섰다.

앙드레김 브랜드의 대중화와 실용화를 선언하고 앙드레김의 제2의 전성기를 준비하고 있는 앙드레김 김중도 대표를 만나 앙드레김 브랜드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앙드레김 김중도 대표]

레전드 매거진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2010년부터 앙드레김 아뜰리에 대표를 맡고 있는 김중도라고 합니다. 벌써 제가 앙드레김을 이끌어온지도 9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네요. 많은 국민분들께서 변함없이 앙드레김 브랜드를 사랑해주시고 끊임없는 관심과 격려를 보내주셔서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제가 인터뷰할 때 가장 편하다고 생각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앙드레김’이라는 브랜드에 대해 굳이 길게 설명을 안 드려도 된다는 점입니다(웃음). 그만큼 아버지께서 워낙 많은 활동을 하셨고, 또 많은 국민분들께서 아버지를 기억해주셨기에 가능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아버지와 아들]

아버지는 항상 저에게 모든 것을 다해주시려 애를 쓰셨습니다. 어머니가 없던 제게는 아버지이자 어머니 같은 존재였죠. 하지만 아버지 역시 엄하게 자라셔서 그랬는지 엄할 때는 다른 그 누구보다 저를 엄하게 대하셨습니다.

많은 분들께서 알고 계시겠지만 저는 1살 때 아버지가 입양하셨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제가 말귀를 알아들을 나이 때부터 항상 말씀하셨습니다. 비록 내가 너를 입양했지만 나는 너를 친자식이라고 생각하고 앞으로도 그렇게 키워줄 것이라 약속하셨죠.

그런 저 역시 아버지를 양아버지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주변에서 양아들이니 양아 버지니 속닥거리는 것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았죠. 사람들의 그런 시선에 제가 힘들어할까 아버지는 저를 더욱 아끼고 사랑해주셨습니다.

모든 것을 다해주시던 아버지께서 저에게 딱 한 가지 못하게 한 일이 있는데 바로 친구 집에서 늦게까지 놀거나 자고 오는 일이었죠. 친구들이 우리 집에 와서 노는 것은 그렇게 좋아하셨는데 제가 남의 집에 너무 늦게까지 있는 것은 그 가정에 폐를 끼치는 것이라 생각하셨던 게 아닐까 해요.

아버지는 이렇게 평생을 사시는 동안 항상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사셨습니다. 그 상대방이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건 어리건 구분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저에게도 ‘항상 겸손하고 항상 낮은 자세로 열심히 노력을 해야 한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저는 어릴 때는 그저 아버지가 1935년 일제 시대에 태어나 일본인들이 가진 겸손한 대토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버지의 겸손함은 단순한 배려와 매너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패션 디자이너 자리에 오르셨을 때도 아버지의 초심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이런 아버지의 품격 있는 태도를 옆에서 지켜보며 저도 자연스럽게 몸에 배었고, 아버지처럼 상대방을 대하려 하고 항상 겸손한 마음으로 사람을 만나고 있습니다.

예전에 저를 찾아온 한 나이 드신 손님은 “아버지의 자리를 이어받은 젊은 청년이라 건방지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겸손함을 갖춘 모습에 놀랐다”라고 저에게 직접 말씀한 적도 있습니다. 아버지는 길거리에서 물건 파는 할머니가 계시면 그냥 지나치질 못했다. 명동 거리에서 노점으로 양말을 팔고 있던 할머니의 양말을 전부 구입해 직원들에게 나눠주신 적도 있습니다. 집 앞 길모퉁이에서 산나물을 팔던 할머니의 채소도 모두 구입하신 적도 있어요.

이런 사소한 마음가짐 하나하나가 앙드레김을 기부천사 기업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희 앙드레김은 어려운 환경에 처한 중학생들을 위한 장학금 지원부터, 서울대학교 병원 인턴 학생들에게 해외 연수 장학금도 지원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가족 기업을 꿈꾸며]

아버지께서 단순히 패션 사업 외에도 이렇게 많은 일을 혼자 다하셨고, 그 모든 일을 제가 물려받아 이어가려니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습니다. 저는 앙드레김을 9년 정도 운영하면서 ‘아버지가 단순히 패션 사업만 한 분이 아니셨구나’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손길이 닿았던 곳이 생각보다 많았다는 것을 알고 나서야 이 모든 것을 제가 해야겠다는 책임감이 확고히 자리 잡았죠.

하지만 저의 다짐만으로는 쉽지 않았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제가 디자이너 일을 한 적도 없었고, 지금 시작한다고 해도 아버지의 명성을 이어나갈 탤런트가 전혀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이것이 가장 큰 장애물로 다가왔습니다.

일단 아버지가 세상에 남겨주신 이 ‘앙드레김’이라는 브랜드를 더 키울 수 없다고 판단했고, 저는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제가 제 자신을 돌아보니 저에게는 ‘끈기’가 잇었습니다. 무언가를 한번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하는 그런 끈기와 고집이 있었죠. 저에게는 저의 이런 장점을 살리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저는 디자이너도 아니었고, 설령 디자이너라 할지라도 아버지처럼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끈기’라는 하나로 9년이라는 시간을 버티다 보니 암흑 같던 제 앞에 조금씨 빛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의 소중한 인연이셨던 분들이 한분 한분 다시 저를 찾아주셨고, 저는 그 격려에 보답하는 마음을 ‘앙드레김 추모 패션쇼’로 보답했습니다.

이 패션쇼를 기점으로 저에게도 기적 같은 힘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8년간 명성 유지만 하자고 매장의 문을 열고 닫고만 했던 제 자신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제가 그렇게 현실에 안주하려는 동안 시간은 너무나 빨리 흘러갔던 것입니다.

지난날의 후회가 저를 움직이는 원동력으로 다가왔습니다. 저는 먼저 앙드레김에서 시도하지 않았던 ‘남성복’과 ‘운동복’ 이 두 라인을 구축하는 계획을 수립하게 됩니다. 가장 기본적인 정장으로 첫선을 보인 남성 맞춤복의 반응은 예상외로 뜨거웠습니다.

‘앙드레김’ 브랜드를 사랑해주셨던 많은 남성 배우분들이 직접 착용해 홍보해주시기도 했고, 그분들을 통한 협찬 의뢰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남성복 라인은 맞춤 양복과 함께 타이, 셔츠, 구두, 클러치팩 등 액세서리도 발매 예정이며 이번 달부터 선보일 예정입니다.

또한 ‘앙드레김’이라는 브랜드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장벽인 가격대를 낮춰 대중적인 브랜드로 자리매김하려 하고 있습니다. ‘앙드레김 브랜드인데 이 정도 가격이면 참 괜찮네’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게 노력 중입니다.

앙드레김의 대중화가 필요한 것은 항상 느껴왔었던 일입니다. 한국 소비자분들은 외국 브랜드에는 기꺼이 높은 가격을 지불하면서도, 한국 브랜드에는 높은 가격을 지불하는 것을 꺼려합니다. 일본이나 미국은 자국 브랜드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하고 이 자긍심들이 국가 브랜드를 만들어냅니다. 저도 앙드레김이 다시 한번 대중의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대중화를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국내 대중화와 함께 또 하나의 목표는 세계화입니다. 아버지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국가관이 있어야 한다’고 항상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세계에 한국을 알리려 끊임없이 노력하셨죠. 주한 대사와 대사 부인들에게 직접 만드신 옷을 선물할 만큼 강한 애국심을 바탕으로 한국이라는 국가브랜드를 높이려 노력하셨습니다.

또 아버지는 외국에 가실 때에는 직접 만드신 새하얀 정장을 차려입고 해외에 가셨어요. 그리고 외국에서 자신의 소개를 할 때는 반드시 ‘저는 한국의 디자이너’라는 것을 항상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생전에 중국, 미국으로 진출하려 계획 중이셨습니다. 외국 바이어들의 반응도 상당히 좋았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안정적인 진출을 위해 미루셨던 일들을 이제는 제가 해야 할 때라 생각합니다.

앙드레김의 세계화의 성패는 미국 진출이 관건입니다. ‘앙드레김’이라는 국가 브랜드가 대한민국 국민분들께도 자긍심을 느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세계화의 일환으로 올 9월 캄보디아 패션쇼를 추진 중이며 이 패션쇼가 앙드레김이 세계 무대에 자리매김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능력을 뛰어넘지는 못합니다. 제가 아버지만큼 ‘앙드레김’이라는 브랜드를 키워낼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버지가 이루어낸 ‘앙드레김’이라는 브랜드 가치에 누가 되지 않도록 유지 하하며 국내에서는 ‘대중화’, 해외에서는 ‘세계화’에 도전해 제2의 ‘앙드레김’ 시대를 열어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